photo by bhlee






















If 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
Then why can't I paint you?
The words will never show the you I've come to know.
If a face could launch a thousand ships,
Then where am I to go?
There's no one home but you,
You're all that's left me too.
And when my love for life is running dry,
You come and pour yourself on me.

If a man could be two places at one time,
I'd be with you.
Tomorrow and today, beside you all the way.
If the world should stop revolving spinning slowly down to die,
I'd spend the end with you.
And when the world was through,
Then one by one the stars would all go out,
Then you and I would simply fly away


Gogh-Olive Trees(1889. Scottich Gallery)

/here only for educational and/or therapeutic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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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er Trees(1889, MOMA)

대지에 묶여있다고 달려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지를 끌고, 그 무거운 중력의 무게를 거스르며 질주하는 나무,
하늘 향해 솟아오르는 나무를 보라.
이미 하늘빛을 닮아버린
저 뜨거운 불을 보라.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비 오는 날- 마종기]

photo by bhle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이형기)

SBS러브FM '죽은 시인의 사회' 특집
2008년 12월 27일(토) 10:12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SBS러브FM(103.5㎒) '책하고 놀자'(오전 6시5분)는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죽은 시인의 사회'를 28일과 내년 1월4일에 각각 방송한다.

1부 '시는 죽었다'에서는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만해축전', 경남 통영에서 진행된 '재능시 낭송 캠프', 지자체와 문학단체가 함께 기획한 '작가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 시를 통해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의 시 치료 모임 등을 소개하고 그 취지와 반응, 한계를 분석한다.

2부 '한국 현대시가 사는 법'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의 생활화를 이룬 가정을 취재하고 문화비평가 김갑수, 시인 장석주, 시평론가 정효구가 함께 하는 좌담을 통해 현대시가 사는 법을 알아본다.

제작진은 "백세를 넘긴 현대시의 현주소와 함께 시와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우리 민족의 시심을 일깨우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van gogh- the sower with the setting sun/ the sower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들은 모두 황혼에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리는 일은 고흐에게 죽음과 탄생의 끊임없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였다. 황혼에 씨를 뿌리는 것은 이어지는 밤, 즉 씨앗이 죽음의 과정을 통해 다시 생명(아침)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말하고자 하는 고흐의 의도를 드러내주고 있다.

2007년도의 글을 옮겨왔다. 이번 전시회에서 이 그림(원래 모마의 소장품이었던)이 당연 포함되어 있었기에.

(at MOMA, YNC, 2007)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Looking at the stars always makes me dream. Why, I ask myself, shouldn't the shining dots of the sky be as accessible as the black dots on the map of France?  Just as we take the train to go to Tarascon or or Rouen, we take death to go to a star." The next year, van Gogh committed suicide.
ㅡㅡ
몇 년 전 처음 이 그림을 만났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작은 화폭에 담긴 별이 빛나는 밤에 의외였다.  그 만큼 이 그림은 나에게 (우리모두에게 그랬겠지만) 우주을 품은 거대함으로 가슴에 새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바라보면 역시 그 작은 화폭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 어떻게 저 작은 화폭에 온 우주만한 고독과  열망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소용돌이를 담을 수 있을까?

사진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붓의 터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떠나지 않고 모여있는 그림이다.

볼 때 마다.... 언제봐도... 고흐의 모든 그림이 그렇듯이 이상하게 슬프고 아프다.  그리고 그의 슬픔과 아픔은 늘 날이 서 있지 않고 감동적이다.  그 아픔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감싸 안아 준다.  그게 내가 기피하는 몇몇 예술가들(아픔에 날이 서있고 그 아픔을 세상을 향해 외치는 독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힘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날 것으로 세상에 들이대는... 그래서 그 그림앞에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과  다른 점이며 모두들 예외없이 고흐를 사랑하는 이유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상은 수평선 아래처럼 고요히 잠들어 있는 밤, 그 정지된 정적 위로 현기증 같은 고독이 몸부림치고 요동치고 있다.  갇힌 공간에서 끊임없이 요동치고 움직이는 에너지.... 그것은 무엇일까?
열정?  검은 싸이프러스 나무가 마치 검은 불꽃처럼 검은 하늘, 죽음으로 밖에는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별들의 화염속으로 손을 뻗는다.  이 그림속의 열정은 어김없이 두려움과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어디선가 내가 쓴 적이 있는데, 고흐 그는 자신을 버린 세상을 버릴 수 없어서 스스로를 버린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든다..... 이 그림을 그린 다음 해 그는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그는 죽음을 타고 저 별로 갔을까?
아니,  어쩌면 죽음을 타고 가서 저 별이 되었으리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빛나는 별....

이 그림은 고흐가 밖에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건강이 않좋아서 밖으로 나가도록 허락을 받을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이 그림을 대부분 기억에 의지해 그렸고 창문을 통해 보는 밤하늘을 그렸다고 알려져있다.  그렇게  '별이 빛나는 밤'은 그의 영혼의 밤이며 가위눌리는 고독과, 지치도록 끈질진 그리움과 슬프도록 강렬한 열정을 그린 그림이다.

가끔 무심히 잠들어 있는 영혼의 밤, 어디선가 저런 소용돌이 치는 열정이 살아 말없이 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깜짝 놀라 어둠 속에서 깨어 사방을 둘러본다.

[크기를 알 수 있도록 내가 곁에 선 사진을 올려본다. MOMA는 내가 전에 갔을 때와 또 달랐다. 2004년  개축 후 세계 3대 미술관이 되었다.  건축물은 찻잔과 같아야한다며  “건축물이 눈에 띄지 않고, 단지 마시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일본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작품. 건물자체가 예술이었다. 공간과 공간사이의 소통. 4시간이 넘도록 있었는데도 아쉽게 나와야 했다.  3층의 건축·디자인 갤러리도 꼭 들러본다.]

 

The Potato Eaters(1885)

81.5*114.5cm, 1885년 4월, 유화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편지)

Cafe de Nuit (1888)

고흐가 그린 풍경이 자연의 강렬하고 영원한 리듬을 담고 있다면 노란 가스등의 가혹한 빛으로 밝혀진 고흐의 도시의 밤은 더욱더 불길하고 고독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Night Cafe는 고흐가 3일간 꼬박 자지 않고 그린 그림으로 인간 열정의 "지옥같은 도가니"를 그려내기 위해 6-7개의 다른 뉘앙스를 보이는 붉은 색과 녹색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천정에 매달려 이글거리는 가스등은 열린 공간, 밤하늘에 매달려 타오르는 별빛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회 그림 중 가장 충격적인 파워를 가진 그림이었다.
그동안 화집을 통해 얼마나 이 그림의 진실된 힘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가...
그날 전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색감을 보여주는 것을 찾지 못하겠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Oil on canvas, 72.5×92.0cm,
Arles: September, 1888 (Paris, Musée d'Orsay)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고흐의 그림은 실제로 보는 것과 사진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림이 그림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재삼 확인시켜준 그림.
그건 살아있는 누군가의 생생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마주할 때와 사진을 볼 때의 차이와 같다고 할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할 수도 있다.  이번 MoMa에서 이 그림을 만날 줄이야.  헉- 하고 숨이 멎었다.  스땅달 신드롬까지는 아니지만 이해가 간다.
어린 시절 (고등학교 때) 당시로서는 구하기도 어려웠던 화집에서 손바닥만한 고흐의 그림 하나 벽에 걸어놓고 밤새 공부는 하지도 않고 그 그림만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밤을 샜었는데.... 그의 그림에는 어떤 열정과 생명력과 고뇌와 사랑이 담겨져 있기에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아이가 한숨 쉬듯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작업을 하고 싶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가끔 그림이나 음악에 해설을 다는 것이 몹쓸 짓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언어가 그 그림에 줄을 긋는 일이나 다름 없을 것이므로.   만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문필가에 버금가는 고흐가 글로 표현했겠지....  그러니 나의 조악한 언어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행복했다. (이 단어 내가 함부로 쓰지 않는 단어이다... 행복!  그건 내가 진정 축복받았다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래, 가장 불행했던 자,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자... 그들은 누군가에게 늘 생명을 전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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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terrible need of -- dare I say the word? -- religion. Then I go out at night to paint the stars...
나는 종교--감히 이 말을 해도 될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면 나는 밤에 밖으로 나가 별들을 그린다.-(Vincent van Gogh, Arles, 1888)

요즘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밤이 낮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강렬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들로 물든 밤....
어떤 별들은 레몬빛을 띠고 있고,
다른 별들은 불처럼 붉거나 녹색, 파란색, 물망초빛을 띤다.

하늘은 청록색이고, 물은 감청색, 대지는 엷은 보라색이다. 도시는 파란색과 보라색을 띠며, 노란색 가스등은 수면 위로 비치면서 붉은 황금색에서 초록빛을 띤 청동색으로까지 변한다. 청록색 하늘 위로 큰곰자리가 녹색과 분홍색의 섬광을 보인다. 그 중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은 가스등의 노골적인 황금색과 대조를 이룬다. 전경에는 두 연인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만든다."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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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Van Gogh and the Colors of the Night

Pen, Paper, Power!
솔직한 글쓰기 몸과 정신건강에 좋다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 글로 옮겨
천식·관절염 증상 완화등 긍정적 연구결과도



Claudia Kalb 기자



로리 갤러웨이(40)는 수십 년 동안 친아버지와 의붓 아버지를 총이나 폭탄으로 살해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녀는 어렸을 적 몇 년 동안 성적 학대를 겪은 결과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정신적 충격에 대해 얘기만 해도 신체 반응이 금방 나타났다.

그녀는 “온몸은 물론 목소리까지 격렬히 떨리곤 했다”고 말했다. 잦은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상담요법에다 항우울제까지 복용해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갤러웨이는 몇 개월 전 색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린 시절 받은 학대가 어떻게 스스로를 가치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는지 30분씩 세 차례에 걸쳐 글로 쓴 것이다. 첫번째 글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세번째가 되자 그녀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곧 떨림 증상은 물론 두통도 사라졌다. 그녀는 “글쓰기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고백에 기초한 글쓰기는 적어도 르네상스 이래 존재했다. 그러나 새 연구에 따르면 그런 글쓰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치유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은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병원 신세를 지는 횟수가 줄어들고 질병 저항력도 강해진다는 사실이 지난 80년대 중반 이래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최근에는 글쓰기와 건강의 연관성을 더 분명히 밝힌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美 의학협회보(JAMA) 최신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는 글쓰기가 천식과 류머티스性 관절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 텍사스大(오스틴)의 심리학 교수로 진솔한 글쓰기 영역의 개척자인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믿기 어렵지만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건강에 유익한 일”이라고 말했다.

적응력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살다보면 부담이 되는 정서적 문제를 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에 따른 고뇌, 친구·가족과의 갈등, 실수와 실기(失機)에 대한 회한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구진은 대상자들에게 사나흘 연속 하루 15∼20분씩 그런 경험을 기술하도록 주문하면서 문장을 다듬거나 격식을 차리는 데는 신경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완벽한 수필을 써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물 집하장으로 파고들어가 마음에 걸리는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페니베이커는 한 연구에서 46명의 대학생을 마음의 상처에 대해 글을 쓴 집단과 기숙사 방이 어떻게 보인다는 등 사소한 일에 대해 적는 집단으로 나눠 비교했다. 연구에 착수하기 전 각 집단이 대학 구내 진료소를 드나든 비율은 비슷했다.

그러나 글쓰기 이후 정신적 충격에 대해 쓴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진료소 출입 비율이 50%나 떨어졌다. 지난해 발표된 또다른 연구에서는 직접적인 생리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글쓰기 덕에 혈액 내 질병을 막아내는 림프구가 증가한 것이다. 예비 연구단계에서는 글쓰기가 혈압을 다소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런 연구는 주로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환자들에게 글쓰기 효과를 시험한 것은 JAMA에 발표된 연구가 처음이다. 그 연구에 따르면 천식 환자의 경우 자동차 사고·신체적 학대·이혼·性적 문제 같은 경험에 대해 기술한 사람의 폐기능이 평균 19% 향상됐다.

류머티스性 관절염 환자의 경우 증상이 28% 호전됐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일을 글로 적은 환자들에게서는 그런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노스 다코타 주립대의 심리학과 조교수로 이번 연구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조슈아 스미스는 “약물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심리적 욕구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쓰기에 단순한 카타르시스(감정 정화)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 덕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념들이 앞뒤가 맞는 이야기로 변형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경험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 경험으로 인한 정서적 충격을 둔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州 채플 힐의 심리학자 테리 밴스가 말하는 ‘편지요법’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밴스는 98년 발간된 ‘마음의 편지’(가제·Letters Home)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연관된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껄끄러운 관계나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소개했다.

그녀에 따르면 직접적인 대화는 감정폭발로 발전할 수 있지만 편지는 그럴 염려가 없다. 어느 환자는 가족 앞으로 편지를 띄운 결과 가족 간의 유대감이 돈독해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됐다며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는 방법도 있다. 심리요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기는 전통적인 대화요법의 강력한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콜로라도州 덴버의 심리요법 전문가 캐슬린 애덤스는 글쓰기를 하면 “자신의 마음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고 대화요법의 효과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

뉴욕 헌터大의 영문과 교수이자 신간 ‘치유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제·Writing as a Way of Healing)의 저자인 루이스 디샐보는 자신이 앓고 있는 천식의 증상 및 그것으로 인한 정서쇠약에 대해 글을 쓴 결과 건강이 크게 호전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하루 두 번 천식약을 복용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증상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만이 글쓰기 요법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책을 읽거나 글쓰기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페니베이커는 글쓰기로 암을 치료할 순 없지만 건강에 ‘큰 효험’을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글쓰기 효과를 직접 시험해보는 것이 어떨까.


출처/ 분당유생 카페 last updated 20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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