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and Healing-I


내가 O'Keefe를 좋아한다고 하자 Santa Fe의 잡지와 안내서를 가져다 주었던 친구, 약혼자가 갑자기 사고로 죽음을 당하자 저널테라피 하나만 바라보고 맨하탄에서 덴버로 날아 온,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 Hope(그녀는 한학기 듣고 그만 두었다. 안타깝게도)는 내게 멋진 달력을 선물했다.  Caroline, Jane, 그리고 Debbie, Bruce, Pat 외에는 이 수업 후 헤어져서 이름을 잊었다...  직업도 시인, 작가지망생, 컴퓨터 프로그래머, 선생, 간호사, 호스피스, 수도국엔지니어 등 다양하다.

 

(아이를 위해 함께 다시 가본 곳.
이 여행이 건축공학을 전공하던 아이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할 줄 그때는 몰랐었다.  이곳이 내가 살고 싶은 곳이다! 고 느낀 아이.
그리고 아이는 결국 그 꿈을 이루었고 뉴욕에서 다시 새로운 그래픽디자이너로의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뉴욕에서 살고 있다. )
생명력과 매력으로 가득한 곳, 뉴욕.   떠나오자 마자 또 가고 싶은 곳. 지난번 여름에 갔을 때는 저 곳이 하이얀 양산아래 테이블이 늘어선 야외 식당이었는데.

ㄴA. 아이가 태어난 USC를 방문하러 간 곳.

BHHotel 야자나무둥지가 코끼리 발같다. 저 나무에 오르면 날 넓은 초원으로 데려가 줄까.

 


예전에는 문인들,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는 Soho거리의 카페 피가로. 유난히 카푸치노 커피가 맛있었다는 곳. 이 날은 미지근한 카푸치노 만큼, 입술에 느껴지는 미끈한 크림의 감촉처럼, 그리고  눅눅한 열기의 7월 초 밤공기처럼 쓸쓸하기만 했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속 방문객들 -그들은 지금 쯤 저 먼 나라에서 무얼할까. 이 세상에서 찾아보고자 열심히 토론하고 표현하던 그 무엇을, 평화와, 해답을 찾았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게 그저 한갖 꿈속의 꿈처럼 작은 일들이어서 다 잊고 있을까? 어린시절 장난감 하나에 울고 웃고 다투던 기억이 우리에게 그저 입가에 맴도는 미소거리 밖에 되지 않듯이?   아니면 아직도 이곳에서 이루지 못했던 무엇이 그리워 그 미련 버리지 못해  저 사진속에서 처럼 이곳에 그림자로 남아 맴돌고 있을까?

멀리서는 독립기념일 불꽃축제의 폭축 터지는 소리가 환상처럼 들려오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방인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나그네.  늘 축제에서 조금쯤 비켜서 있거나, 영광이 다 사라진 뒷골목 추억의 카페에 죽은 자들의 환영과 함께 앉아있는. 나도 그저 또하나의 그림자, 환영에 지나지 않는 ..

7월 4일

 

김환기-봄의 소리1969(치료/교육목적으로 이곳에서만 사용되었음)

--나는 간혹, 수화 김환기의 별처럼 많은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행위가 별이 가득찬 어느 우주공간을 끝도 없이 유영하면서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전에 수화는 말했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지금도 아직 유효한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이흥우 1993)

--김환기 선생의 봄의 소리는 1969년에 그린 뉴욕 시기의 대표작 중 한점이다. 수없이 빛나는 블루빛의 별들은 김환기 선생의 별들은그분의  마음속에 빛나는 별빛이다. 수많은 별빛이다. 그 수많은 꿈을 별빛에 담아 그린 이 작품을 떠올리며 화가들이 그린 꿈을 생각하는 하루, 감사하는 하루, 꿈을 이루는 성취하는 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 오정엽의 미술이야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꿈을 담아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나간 추상화가 김환기(1913∼1974년).
김환기가 뉴욕의 화실에서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 (쿠르티옹이 '청색의 소용돌이요, 입자들의 교향악'이라고도 말한), 무한히 반복되며 찍어지는 동양적인 필촉감의 점들과 그어지는 선, 그것은 모든 현상(萬象)이 하나의 유전인자 같은 최소한의 단위나, 궁극의 원리(동양의 性理學의 경우 道, 또는 理氣)로 환원된 것 같은 점과 혹은 선들이다. 그것을 그림이 그려가는 '광대한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생명의 전율'이며, 그 생명은 '물과 불이 형제와도 같고 땅과 하늘이 양극의 힘으로 혼합되어 있던 때인 태초의 시간에 최초로 형성된 깊은 곳에서 감지한 생명'(장자크 레베크)이라고, 장자의 혼돈과 같은 말을 한 유럽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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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예전에 큰 감동으로 읽은 서경식의 비공개 글을 내 블로그에서 찾아 읽고 김환기가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이 생각났다.(8/8/24) 

 

서경식은 고흐의 그림에서 그의 신체와 뗄 수 없이 연결된 관계를 본다. 그림이 그 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림에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여해 점묘로 그린다든가 붓터치를 여려 겹으로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신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엄청난 힘과 품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시간에 그린 그림과 달리 그가 ‘밭을 가는 것처럼’이라고 말한 것처럼 구불구불 굴곡을 만들며 그린 것입니다. 한 번의 ‘구불’마다 생명이 깎인다고 할까요, 깎인 생명이 캔버스 위에 쌓인다고 할까요. 그런 변화는 아를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생레미 시대에 전면적으로 드러납니다. 죽음에 접근함과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

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화가가 그림과 관계 맺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라고들 합니다. 아웃사이더나 정신병자가 자주 점묘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으면 그림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화면에 쌓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게 마련입니다.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317~319쪽) ㅡ 서경식/[고뇌의 원급법]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롱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거문고 - 김영랑 ]

<청춘 Youth> - 사무엘 울만  Samuel Ullman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말한다.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살의 청년보다 예순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으니 우리는 세월때문에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기 때문이다. 세월은 살결의 주름을 만들지만, 우리가 열정을 포기할 때 영혼에 주름이 생긴다. 근심, 두려움, 자아불신은 용기를 꺾고, 우리의 정신을 티끌로 돌아가게 한다.   당신이 젊은 한, 예순이건, 열 여섯이건 당신의 속에는 경이로움에의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미래에 대한 탐구심이 가득차 있으며  인생이라는 게임을 즐거워한다. 당신이 젊은 한, 당신과 나의 가슴 한 가운데에는 무선전신국이 있어 인간과 신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 침체되어있고  당신의 정신이 냉소주의의 싸늘한 눈(雪)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당신은 스무 살이라도 늙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이 높이 날며 낙관주의의 파도를 타고있는 한, 당신은 비록 여든 살이라도 청춘으로 죽을 수 있다.

Copyright ⓒ2002 BongheeLee

[Abstract]  


Windows, Rooms and Peeping Toms in Cinemato-graphicum Mundi:
Hitchcock's Rear Window

by Bonghee Lee


The title of Alfred Hitchcock's film is Rear Window which is based on the short story, "It Had to be Murder". Windows are frequently used in films and arts as an image and an expression of the frustration of and the resulting desire for communication. More often than not windows represent a desire to escape from the present situation to the unknown, free world. However, Hitchcock's "window" is at the rear which is opened to the rear windows of the private lives of New York apartments, to the prison like frames of the residents. The first part of the essay surveys the various roles the 'window' plays in RW.


A window is meant for looking out of, not the reverse. In RW, Jeff's rear window is a voyeuristic instrument which is meant for looking through other windows into the rooms from outside. The view of the inside from the outside became a popular motif in the 20th century paintings among which Hitchcock's contemporary and an enthusiastic theater-goer Edward Hopper's paintings give most insight to understand RW as is pointed out by  Pallasmaa. Many of Hopper's paintings use the compositional device of an interior with a nude or half-dressed woman glimpsed through a window by an unseen viewer who looks in from outside. The impression conveyed from both Hopper and RW, however, is not one of prurient voyeurism but rather of loneliness and isolation. This sense of isolation comes partly from the inevitable distance and the psychological gulf between the eye(cinema spectators) and the object(cinema): visual activity is by nature a touch without a touch, a contact without a contact. Hitchcock both reverses the roles of and shifts the power of the surveillant and the surveilled once more when the object of Jeff's observation breaks out of the frame and attacks him. The study of the relation between the art(eye) and the object again is a popular motif in the paintings such as Velasquez's Cupido and Venus. The spectator's voyeuristic curiosity is stirred by the nude Venus sitting askance with her back, with Cupid holding up the mirror for her in front of her. However, it is instantly and unexpectedly attacked when the spectator meets Venus' eyes looking directly at him from the mirror. The fantasy about the safety of the observer is shattered as if a dinosaur virtually attacks spectators from out of the screen frame.


If each window is a screen and Jeff is a cinema spectator, then the lives in the rear window frames are the wish-fulfillment of Jeff and other voyeur, Lisa. 'Desire' is from the Latin, de-sidus(from the star), referring that it is essentially a longing for the unattainable. Another term for desire or longing is anxiety. The double nature of Jeff's desire for Lisa, i.e. craving and rejection(anxiety), can help understanding Jeff's projection of his wish-fulfillment on the screen(windows he is watching) through the dream-works of condensation and displacement: Lisa/Torso/Mrs. Thorwald. It is natural that only when Lisa 'enters' into Jeff's fantasy world, when all other enticements to get his heart fail, can she win and get the upper hand.


The second part of this essay examines the roles of the rooms in RW, and relates one of its roles, that of Peeping Tom, to other "race of Peeping Toms" in the movie including the dog that is killed because "it knew too much". Hitchcock proceeds to include the movie spectators in the race of Peeping Toms, which leads to the third and concluding part of the essay.


The third part surveys the idea of "the world is a stage and the life is a cinema and we are actors and actresses" in RW. Whether or not Hitchcock endorses the voyeurism of the race of Peeping Toms(both cinema and audience), one thing for sure is that life is "a group of little stories," a potential cinematic art. If cinema itself is represented desires of both scopophilia and exhibitionism, then life, too, is like a texture woven with the desires to be an audience and to be an actor. Both desires in essence are the expression of the need to escape from loneliness: the need to be cared for and encouraged, to be "a neighbor" to each other. This is the answer of Hitchcock to the question of "rear window ethics" which Jeff poses in the movie. After all, without a neighbor, all the great works of Hitchcock would nothing but a lonely pantomime of Miss Lonelyhearts who invites an invisible guest to her feast but to despair.


Copyright ⓒ2002 Bongh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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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세상'에서의 창과 방 그리고 엿보기: 히치콕의 <이창>

Windows, Rooms and Peeping Toms in Cinemato-graphicum Mundi: Rear Window  by Hitchcock


I. 창


울뤼치(Cornell Woolrich)의 소설 『살인이 틀림없어』(It Had to be Murder)를 기초한 히치콕의 영화는 제목이 <뒷 창문 (Rear Window)>이다. 창을 인간의 의사소통, 혹은 그 단절, 그로 인한 절망이나 그리움을 나타내는 언어로 사용한 영화의 장면은 무수히 많다. 위에 인용한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닥터 지바고>에서 비극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흔히 <창>이라고 하면 닫힌 공간에서 열린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라는 일차적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기에 창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시는 많은 경우 현재에서의 일탈과 변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연결되어있다. 반면 닫힌 공간이 그의 세계의 전부인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의식이 죽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열린 세계가 오히려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 이런 창 안 밖에 대한 인식의 대조적 차이는 영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에서 뉴랜드와 메이의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데서 아주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숨막힐 듯한 안일과 위선과 규범의 감옥에서 창을 열고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싶어하는 뉴랜드에게 메이는 말한다. "창문 좀 닫으세요. 그러다가 죽을 병(독감)에 걸리겠어요."그리고 뉴랜드는 문득 자기가 이미 죽음이라는 병에 걸려있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에 걸린다고!" 그는 아내의 말을 되 뇌이다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그 병에 걸렸는걸. 나는 죽은 몸이지--난 몇 달째 몇 달째 죽은 채로 살고 있어.

"Catch my death!" he echoed; and he felt like adding: "But I've caught it already. I AM dead--I've been dead for months and months."



반면 히치콕의 창은 열린 세계로 향한 창이 아니라 집 뒤에 낸 창문이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적이고 은밀한 욕망이나 삶, 심리적 내면의 세계, 또는 자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이 영화의 주된 시점인 사진기사 제프(L. B. Jesfferies: James Stewart)의 뒤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마당을 둘러싼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아파트들의 뒷모습이며 숨막힐 듯한 닫힌 공간이다. 더구나 화면에는 그 각각의 아파트에서 밖으로 나가는 빌딩의 입구는 보여지지 않는다. 아파트 사이의 좁은 골목만이 유일한 통로이며 이곳을 통해 거리의 한 부분과 건너편 레스토랑을 보여줄 뿐이다. 제프의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아파트들 뒤의 창문들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적 공간을 자신도 모르는 관찰자에게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감옥 중에 가장 가혹한 곳은 창이 없는 닫힌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히치콕은 아이러닉하게도 마당을 중간에 두고 제프의 창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주 넓게 열려있는 창이 난 7개의 아파트 방들을 푸코(Foucault)가 말하는 원형감옥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푸코는 『기율과 형벌』(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에서 "우리 사회는 관찰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다... 우리가 사는 곳은 '원형극장'도 '무대 위'도 아니라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이는 파노라마 기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200) 푸코는 인간이 어떻게 제도적 통제와 과학적 탐구 그리고 행동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수단으로 벤담(Jeremy Bentham)의 원형감옥(망원렌즈로 죄수들이 모르게 모든 감옥 안을 감시하고 있는)을 이용하고 있다. 커다란 창문이 달린 감옥 아닌 감옥을 세트로 사용한 이 영화에서 히치콕은 감시와 감찰이라는 엿보기 행위의 이중성을 제프의 행위를 통해 탐구한다. 제프는 석고붕대를 하고 아파트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다가 단순한 호기심에서 뒷 창문을 통해 건너편 아파트의 사람들의 창 너머 삶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차차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고 해결하기 위해 토월드(Lars Thorwald: Raymond Burr)를 감시하는 감시자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원래는 건물이나 집안에서 밖을 보기 위한 장치인 창은 히치콕에 의해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관찰 또는 감시하는 장치로 그 의미가 전복된다. 그리고 이때 그 관찰되고 있는 대상은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밖에서부터 유심히 관찰/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인물은 르네상스시대 이래 친숙한 그림의 소재(관찰의 대상/모델)가 되어왔으며 관찰자(미술가)는 항상 그 대상인 모델과 같은 공간 안에 (그 모델의 동의하에) 존재한다. 반면 밖에서 창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유행이다. 히치콕과 동시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에 나타난 뉴욕풍경은 창 밖에서 들여다본 창안의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1920-30년대 호퍼는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야창(Night Windows)」(1928)을 비롯한 일련의 그림들에서 우리는 영화화면이나 극장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창(Night Windows)」의 전경에 있는 외부로 난 유리창턱은 무대의 가장자리를 연상시키며 그 위로 마치 조명등 아래의 무대 장면처럼 방안의 광경이 보인다.(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