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much1900
"내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종의 병이었고. 도취였다. 그 병은 벗어나고 싶지 않은 병이었으며 그 도취는 내게 필요한 도취였다" (munch) 나의 병은 필요한 것일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The Sick Rose - William Blake
오 장미여, 너는 병들었다. 울부짓는 폭풍 속 어둔 밤을 날아다니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진홍빛 기쁨이 있는 너의 침대를 발견하여 그의 어둡고 비밀스런 사랑이 너의 삶을 파괴하는구나. Oh rose, thou art sick; The invisible worm That flies in the night In the howling storm has found out thy bed Of crimson joy, And his dark secret love Does thy life destory. (Blake는 시인이지만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자신의 삽화를 넣곤 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사온 그의 삽화가 있는 시집은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왜 나는 나약하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 안된단 말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보라. 내가 문밖에서 기다리노니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수필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 중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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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허가받은 자유시간이 고속도로 운전이다. 특히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퇴근길의 고속도로에서 듣는 음악은 내가 나를 떠나 음악과 하나가 되는 환희의 순간들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카잘스와 요요마를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듣는다든지, 1004번 파르티타 샤콘느를 듣거나, 아니 때로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을 때,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트를 한 음도 놓칠 수 없이 전 악장에 온전히 날 내어 맡길 때, 너무 맘이 비장한 날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특히 라크리모사(물론 이건 모차르트가 완성한 곡은 아니지만)를 들을 때, 아니면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기분전환으로 파바로티의 성가곡, 아니면 다른 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열정으로 부르는 "패션(Passion)" 이라든가, 카루소, 또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라면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아이다의 정결한 여신이라든가, 아니면 군둘라 야노비츠가 부르는(다른 사람은 안된다)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아리아 "그리운 그 시절은 가고, 즐겁던 시절은 잠시 뿐"만 들어도 어떤 때는 "좋아서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그 리스트를 다 열거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하루종일 음악이 흐르지 못하고 이것저것 불협화음으로 괴로울 때는 나도 올페우스처럼 지옥 같은 내 절망의 심연에 대고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라고 한 두 번 노래했던가? 음악을 듣다가 흥분되어 하루동안의 모든 고통스러운 맘의 응어리와 피로를 다 잊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날밤 퇴근길에도 너무 지쳐서 언제나처럼 커피를 진하게 보온병 가득 타서 비상약처럼 곁에 두고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FM을 틀었는데 마침 미샤 마이스키 공연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음악회에 가보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음악학과 교수는 내가 CD나 테이프, FM에서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그런 것으로는 음악을 도저히 못 듣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지만 내겐 그것도 좋아서 좁은 운전공간에 온 우주라도 함께 곁에 있어주는 양 충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날은 반 수면상태에서 운전하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차츰 나를 피로의 늪에서 끌어내어 넓은 광야로 달리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A 장조 3번 소나타는 압권이었다. 마이스키의 저음은 놀랍고도 화려한 노크였다. 나도 돌봐주지 못한, 내 관심이 미치지도 못하는 내 깊은 가슴속 바닥까지 찾아가 노크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깊은 속에서 문을 열고 릴케의 "소년"이 달려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야생마를 타고 달리는 소년, 나는 그런 소년이 되고 싶다"는 릴케의 시를 외우며 단숨에 말을 달리듯, 몸이 날아갈 듯 고속도로를 달려왔었다. 마이스키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한복을 입은 멋진 모습의 그가 신문에 화제가 되고 내한공연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모든 것 다 잊고 귀 막고 눈감고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의 음반을 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래 묵은 좋아하는 음악을 꺼내 듣고 또 듣는 기쁨과 달리 이렇게 뜻밖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은 잊을 수가 없는 감동이다. 지금 마이스키를 듣는다면 아마 그 첫 대면의 흥분을 느낄 수는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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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내 개인 홈페이지에서 HS학생(지금은 유학중. 아기아빠이며 전도사님이다.)과 주고 받았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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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달이 넘어 만나니 참 반가웠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모였다. 처음 온 분도 있고. 인천, 천안에서 온 이들도 있다. 그동안 일어났던 참 좋은 일들을 소식으로 가져오신 분들도 있었다. 모두들 사람들에게 일어난 뜻밖의 변화에 대해 감동을 받았고 동시에 용기도 얻고 또 더욱 겸손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만이라 서로 할 이야기도 많았지만 오늘의 시가 또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3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모두들 더 통찰력이 깊어지고 관점이 넓어지는 것을 참여자들이 다 스스로 느끼는 기회가 된 모임이었다.
다음달 부터는 첫째 주 토요일에 모임을 갖기로 하였으므로 2월 모임은 다음 주인 2/3일이 된다. 마침 카메라가 있어서 한장 찰칵!! (먼저 가신 L선생님께는 좀 미안했지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You are special.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가 눈물 흘렸을 때 당신이 닦아 주었고 내가 혼동 중에 방황할 때 당신은 내 의심을 씻어주었습니다. 내 영혼을 팔았지만 당신이 내게 되찾아 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귀함 주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필요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다시 홀로 설 힘을 주었고 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해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중해 주니 너무 높아 영원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바로 당신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어요, 그게 사실이라는 게, 나 당신이 필요했는데 당신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내가 왜 바보같이 떠나겠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그런 사람 찾았는데.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 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 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 마종기]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네가 얼마나 사랑스런 데.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좀 힘들겠지만 용기가 나면 그 사람에게 웃어봐. 그건 일종의 "역할극"이라고 생각해. 네가 그 사회에서 해야하는 너의 "역할"을 하는 거야. 무대 위에서 하듯이. 화장을 하듯이. 그리고 가끔 그 사람 책상 위에 쵸콜렛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아봐. 이건 참 힘드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어떨 땐 내가 그런 행동을 (의지적으로, 용기내어) 하고 나면 그런 맘이 따라올 때도 있어. (이건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내지 않는 편지쓰기를 한 후 혹시 용기가 나면 해봐.) 어쩌면 의외로 그 사람 네게 상처준 일이 있는 지 조차 기억도 못할거야. 즉 네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 그런 거야. 기억해. 인간들이 다 그런거야.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한단다. 때로는 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때가 있단다. 누구나 그래.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나약하단다. 그냥 각자 몸에 자신들만의 냄새를 가지고 살 듯 자신들의 뾰죽한 가시, 울퉁불퉁한 혹... 들을 품고 살면서 서로 스쳐갈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못된 냄새를 풍겨 불쾌하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내게서도 나는 모르는 냄새가 날수도 있고 뽀죽한 가시가 남을 긇을 수도 있는데 각자는 자신의 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서로 부딛치고 상처입고 차차 뽀죽한 부분들이 닳고 .... 그렇게 성숙해 가는 거야. 때로 내가 냄새가 있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은 열심히 몸을 씻고(인격을 가다듬고, 인내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과 자제하는 법을 배우고) 때로 향수를 뿌려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고 감추고 남앞에 나가기도 해. 그러니까 겁먹지마.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사람 성격이 그런거야. 가시나무도 있고 향기로운 꽃도 있고 그런 숲이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이곳에 있는 학생들의 글(치료모임이야기)을 읽어봐. 그애들도 첨엔 많이 힘들어 했었어.꼭 내 말대로 그렇게 해봐. 그리고 작은 일기장이나 노트 하나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직장에서도 그런 일 있으면 화장실 같은 데 가거나 점심시간에 카페 같은 데 가서 맘껏 분노를 터뜨리는 글을 써봐. 억울함. 분노, 미움은 간직하면 점점 널 힘들게 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혹으로, 가시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로 남을 수도 있는 거야. 그 그 가시가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거야. 남을 상처주기 이전에 우선 나부터 망가지게 한단다. 그러니까 분노, 슬픔, 억울함, 원한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때 그때 그 에너지들을 분출해버려야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야.) 털어버려야 해. 알았지?선생님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게 아니란다. 우선 육체적으로도 늘 힘들어. 어제 밤에도 내내 앓고 결국엔 두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어 새벽에 일어났다가 네 글을 보았네.... 그래도 또 학교 갈 준비해야 하지. 사는게 다 그런거야. 서글프게도. 시간이 없어서 급히 썼어. 언제라도 힘들면 편지해.오늘도 힘내. 널 위해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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