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 -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익명 | 2022.07.06 1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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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가시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

 

 

글 이봉희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

상담심리사/ 내 마음을 만지다저자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것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흔히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통해서만 자신감이 생긴다면, 자신감을 갖기란 얼마나 힘이 들까요? 그 자신감은 얼마나 위태로울까요? 세상에는 성공하는 순간보다 실패하고 실수하는 순간들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그 누구도 실패나 좌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감은 때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것들을 인내하면서, 실패하는 나를 포용하는 마음에서부터 생길 수 있습니다.

 

나의 초는 양쪽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밤이 채 가기 전 다 타버리겠지만

, 내 적들과 오, 내 친구들이여,

나의 초는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멀레이(미국 시인·극작가)

 

시인은 자신의 삶을 양초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초는 어쩌면 버거운 고통과 현실 때문에, 마치 양쪽으로 타들어가는 초처럼 버티기 힘들거나 곧 꺼져버릴 듯 위태롭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주눅 들거나 비관하거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촛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빛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고통 받고 있는 나, 세상에서 패배한 나, 뒤돌아오면 회한으로 가득한 나, 그런 내 모습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타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에 대한 긍지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겁쟁이들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후부터는 다른 모든 것은 쉽게 저버릴 수 있다.

                                                                                                        - 맥카시(미국 소설가비평가)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초라한 나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따듯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친 나를 받아주고 품어주는 마음이 자신감입니다. 지금 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끝났다고 울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고 웃을 수 있는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감은 결과에 관계없이 노력하고 투쟁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입니다. 단순히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이상의 마음입니다. 바이런이 쓴 시를 보면 이해가 될지 모릅니다.

 

내 영혼이 고통 속으로 이끌려가는 것을 느끼지만그렇다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쫓는 수많은 격심한 고통이 있다.그것들은 나를 짓누를 수는 있지만, 나를 업신여기지는 못하리라.

그것들이 나를 고문할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나를 굴복시키진 못하리라.

                                                                                                          -바이런(영국 시인)

 

그렇기에 병상에 있던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복과 기쁨이 아니라 투쟁에서 나오는 보다 깊은 만족감에 있다라고요. 그 깊은 만족감이 나에 대한 긍지이며 사랑이며 자신감입니다. 큰소리만 치는 것이 용기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루가 끝나는 순간 실패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일 다시 시작할거야.” 라고 말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자신감입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름다운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나의 존재에 대한 따뜻한 긍정과 사랑입니다. 지금 나는 가시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는 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자신감이 나오는 것입니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 김승희, '장미와 가시' 중 일부

 

 

(C)2017이봉희 저작권이 있으며 일부 혹은 전부를 사전 승인 없이 인용하거나 사용할 수 없음.

HATO 원고: 병원 환자들과 장기요양환자들, 그리고 가족을 위한 잡지에 기고한 글임.


 

1234 | 2018.10.08 14: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문학치료 대학원 KIY선생님의 시]

내가 하고 있는 그것

하고 싶은 게 많아질수록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생길수록
더 잘하고싶다

내가 나를 극복한다고 생각하며
한계단 한계단 즐겁게 올라갔는데
애써 올라와보면
또 무언가를 극복해야한다

어렵기만 했던 극복이
이제 어렵지는 않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의기소침해진다.

하고 싶은 게 없을 때는
아무렇지 않더니
하고 싶은 게 많아지니
잘하지 못하는 내가 자꾸만 보인다

그렇게 한없이 땅 속으로 꺼지고 있을 때
나를 끄집어 올린 말
'자신감은 나를 극복하는 게 아닌
하고 있는 그것'임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훈장처럼  매달고 다녔던 극복을
주머니에 넣고
그렇게 나는 또 뚜벅뚜벅 걸어간다
-------
교수님~~동기샘들이랑은 공유했는데요. 교수님께 보내려니혹시나 부담스러우실까봐~~망설였는데 ㅎㅎ저번 주에 수업 하고내러가는 길에 쓴 시예요~^^[자신감에 대한 교수님의 글 이야기를 듣고.....]물론 오늘도 썼는데그건 까페에 올렸어요 이미..😃------------------------
journaltherapy | 2018.10.15 18:58 | PERMALINK | EDIT/DEL
저는 늘 샘의 통찰력에 감동받고 수업때마다 힘을 얻어요..
매주 수업에서 같이 배우고 실습하고 피드백 받는 것 허투르 듣지 않고 늘 새로운 관점으로 이런 저런 자신의 경험들을 성찰하시는 모습에 늘 감동받습니다.

모든 샘들이 학기가 지날 수록 눈에 띄게 점점 성장하시는 모습 보며 정말 참 괜찮은 문학치료사들이 되시겠구나 확신과 믿음이 생기며 얼마나 감사한지요...
익명 | 2018.10.08 14: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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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 2019.09.18 13: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SSA | 2019.09.18 13: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내 마음을 만지다를 읽을 때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서 더 읽지 못하기도,
읽으면서 희망으로 마음이 뛰어서 읽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또 희망으로 마음이 뜁니다.
감사합니다.
익명 | 2022.07.04 10: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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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멀리서 빈다... 
가을에 주로 읽던 시인데 

오늘은 귀국에 딱 맞춰 의뢰가 들어온

이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특강/워크숍을 위해 

내가 찍었던 사진이 하나 떠올라서 이 시를 같이 읽어보기로 했다. 

(문학치료자료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멀리서 멀리로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저 바라보는 나뭇잎 다 떨군 나무의 심정이,

이리저리 가시처럼 찢긴 그 매마른 손짓이 가슴에 남아있었던 사진이었기 때문일까?  

 

보내는 나무의 모습처럼

 망망대해를 향해 떠나는 배도 그리 행복한 유람선 같지는 않아서... 

 

가을이다.. 를 6월이다/ 초여름이다/ 그 어느 때면 어떠랴... 

우리는 언제나 아픈데...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나에게

그에게

 

길 포말로 남은 저 떠나는 배의 마음은 무엇일까?

미련일까 아쉬움일까 회한일까 미움일까 미안함일까 두려움일까.....  그 모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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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꽃 - 이형기

 

앉은뱅이꽃이 피었다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

 

진한 보랏빛

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

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

그래그래 지고말고

덧없는 소멸

그것이 꿈이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

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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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이형기

 

모래는 작지만 모두가 고집 센 한 알이다.

그러나 한 알만의 모래는 없다.

한 알 한 알이 무수하게 모여서 모래다.

 

오죽이나 외로워 그랬을까 하고 보면

웬걸 모여서는 서로가

모른 체 등을 돌리고 있는 모래

모래를 서로 손잡게 하려고

신이 모래밭에 하루 종일 봄비를 뿌린다.

 

하지만 뿌리면 뿌리는 그대로

모래 밑으로 모조리 새 나가 버리는 봄비

자비로운 신은 또 민들레 꽃씨를

모래밭에 한 옴큼 날려 보낸다.

싹트는 법이 없다.

 

더 이상은 손을 쓸 도리가 없군

구제 불능이야

신은 드디어 포기를 결정한다.

신의 눈 밖에 난 영원한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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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쟁이덩굴 -공재동

  비좁은 담벼락을
  촘촘히 메우고도
  줄기끼리 겹치는 법이 없다.

  몸싸움 한 번 없이
  오순도순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진초록 잎사귀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주는
  저 초록의 평화를  

  무서운 태풍도
  세찬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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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를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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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이해인

그 누구를 용서 할 수 없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묻으려고 산에 오른다.

산의 참 이야기는 산만이 알고
나의 참 이야기는 나만이 아는 것
세상에 사는 동안 다는 말 못할 일들을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품고 산다.


그 누구도 추측만으로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없다


꼭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기 어려워
산에 오르면
산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


좀더 참을성을 키우라고
내 어깨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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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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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 과식 - 나희덕>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햇빛이 가득한 건
  근래 보기 드문 일

  오랜 허기를 채우려고
  맨발 몇이
  봄날 오후 산자락에 누워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햇빛을
  연초록 잎들이 그렇게 하듯이
  핥아먹고 빨아먹고 꼭꼭 씹어도 먹고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댔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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