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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적(書籍)- 기형도 | 2024.09.04
바람은 그대 쪽으로 - 기형도 3 | 2017.03.10 밤 눈 - 기형도 | 2017.01.14 노을-기형도 3 | 2013.08.18 오래된 서적 - 기형도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속에서 끼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의 벽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를 다 닦아내는 박명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네 속을 열면 몇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ongheeLee @Sata Fe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 6시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도시는 곧 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책이 되리라. 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오후 6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기형도- 노을)
무심히 아름답다고 감탄하면서 매일같이 바라보는 노을로부터 가슴에 알 수 없는 아픔이 전해올 때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노을이 불타는 오후, 소각장의 폐휴지처럼 타들어가는 남은 햇살들을 보면서 못 다 태운 채 가슴에 남겨진 나의 열정들이 아파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직도 죽지 못해서 펄펄 살아있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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