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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늦은 아침, 창을 열자 제법 센 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밀려 들어온다. 

바람...하면 어떤 바람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를까? 

오늘처럼  차가운 겨울바람? 산에 올라 땀을 식히던 그 맑고 시원한 바람? 
어린 시절 동요에 나타난 잠든 뱃사공 대신 말없이 노를 저어주는 고마운 바람? 
추억을 일깨워주는 수많은 바람들... 
그중에서 나는 윤동주의 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얼마나 맑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또 그래서 끙하고 가슴 저려오는 고백인가?

큰 바람이 불어야만 바람을 느끼는 우리들인데. 

뿌리 깊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도 아니고 작은 이파리 하나가 흔들리는 그 작은 바람에도 그는 아팠다 한다.

 

오늘 찬바람 스치는 거리를 지나며 동주의 이 맑은 시구절을 습관처럼 외다가

아주 오래 전 30대인가, 어느 날이 떠올랐다. 지친 퇴근길에 일몰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ㅡ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야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어가는 것이니까…"

이 나이 되어서도 아직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죽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아직 살아있기에?
나도, 그리고 그들도/세상도.... 

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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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