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에 해당되는 글 4건

 

그림: Q. Buchholz(here only for educational and/or therapeutic purposes)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未知(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 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忍苦(인고)의 물이
水深(수심)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도종환 - 폭설

폭설이 내렸어요 이십 년만에 내리는
큰눈이라 했어요 그 겨울 나는 다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지요
때묻은 내 마음의 돌담과 바람뿐인
삶의 빈 벌판 쓸쓸한 가지를 분지를 듯
눈은 쌓였어요
길을 내러 나갔지요
누군가 이 길을 걸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내게 오는 길을 쓸러 나갔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 속
빈 방을 새로 닦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히기보다는
소리 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 느꼈어요
새벽 강물처럼 내 사랑도 흐르다
저 홀로 아프게 자란 나무들 만나면
물안개로 몸을 바꿔 그 곁에 조용히 머물고
욕심없이 자라는 새떼를 만나면
내 마음도 그렇게 깃을 치며 하늘을 오를 것 같았어요
구원과 절망을 똑같이 생각했어요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덮은 뒤 더러운 것들과 함께
녹으며 한동안은 때묻은 채 길에 쓰러져 있을
마지막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의 그 눈들의 남은 시간을
그러나 다시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눈물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고통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일도 또한 그러하겠지만
눈물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다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며
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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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덮은 뒤 더러운 것들과 함께 녹으며 한동안은 때묻은 채 길에 쓰러져 있을" 그 눈들의 "남은 시간," ㅡ 그것이 차마 고통스러 힘들어했었습니다. 이 땅의 때묻음, 세상의 나약함은 덮는다고 가린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녹지 않는 눈 같은 환상이라도 있어 내 눈을 덮어주길 바란 것일까요? 어둠에 그을린 세상을 온몸으로 덮고 함께 녹아 길에 쓰러져 그 최후를 맞이하는 눈...그것을 다시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이 겨울에는 질척이는 외롭고 응달진 골목을 걸을 때 그 속에 함께 녹아 내린 희디 흰 눈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코스모스 - 이형기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ㅡ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룽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셔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   

 

ㅡㅡ 

가을하늘이 숨이 막히도록 푸르게 점점 높아만 갑니다. 어느새 한해도 이 가을이 질 때 함께 저물어갈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물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에겐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꽃은 국화와 코스모스입니다. 싸늘한 국화의 향기가 쓸쓸함과 외로움, 고독함의 냄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스모스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트이고 싶은 마음,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던 우리 가슴 깊은 곳의 이루지 못한 '간절함'을 그리움이란 설움으로 말없이 피워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남은 한 해, 나의 그 간절함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습니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이 오늘도 목이 가늘도록 날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는 데 나는 무심히 등 돌리고 부지런히 세상의 물결을 쫓아 떠밀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한해가 저물기 전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문득 뒤돌아 달려가 그 그리움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은 내 가슴 깊은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며 온전히 꽃피워야할 '나의 참 모습'입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나그네로 세상에 살되 영원한 고향을 기억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살아있게 하는 손짓입니다. 저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가 파랗게 파랗게 부셔져 하늘과 나,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해..
-[ 덴버 중앙일보 칼럼, <내 마음의 작은 새>중에서] 
04

 

by bhlee

못- 천양희

벽에다 못 하나 박았다. 벽이 울렸다.
박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벽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받으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박았다.

벽에서 못 하나 뽑았다. 벽이 울렸다.
뽑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마음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보내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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