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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死靈 중에서>

기다림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도망쳐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다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고통스런 업이 되어버린 적은 없었나요?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는 “기다림은 아픔이다. 잊는 것도 아픔이다. 하지만 둘 중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중략.......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중에서


차라리 기다리는 것이 덜 아프다


나는 기다립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오지 않는 그대를. 지친 나그네 바람이라도 머물다가겠지, 그렇게 위로하며 오늘도 마음의 문 앞에 의자 하나 내어 놓습니다. 맘 편히 쉬었다 가라고 가만히 문을 닫아놓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궁금하다면, 혹시라도 나를 기억한다면 문을 두드리리라, 그렇게 위로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 그 의자를 치워야 할까요?

.....중략.........



우리가 진정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꿈에서 나타나는 무의식적 욕구처럼 때로 변장을 하고 나타납니다. 때로는 연인의 모습으로, 또 때로는 성공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시인의 말대로 우리가 진실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기다려봐야 알 수 있는지 모릅니다.


기다리는 님이 오지 않았기에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오지 않았기에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기다리는 님은 오지 않았기에

나는 님을 누군지 알 것만 같다

- 김형영,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기다림을 계속하는 것, 오지 않는 그 무엇을 기다리는 것, 그것은 답 없는 질문을 계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질문입니다. 기다림이 없으면 길을 잃을지 모릅니다. 답이 없어도 질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질문은 대상을 향한 나의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자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기다림처럼 아직은 이해할 수 없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성실한 의지이며 희망입니다.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다림을 통해 만나는 것은 ‘그’가 아닌 나 자신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기다림은 질문처럼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최초의 질문이나 최초의 기다림의 이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면서 기다리던 내 마음이 차차 호수처럼 잠잠해지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참으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쓸쓸한 아픔입니다.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작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형기, <호수>)입니다. 오늘도 쓸쓸한 날, 나를 토닥여주며 말해봅니다. “아프지, 그게 진심만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야. / 아프지, 그게 서로 부르고 있다는 증거야”라고.(마종기, <상처6>) 그리고 여전히 내 마음 문 밖에 의자 하나 내어 놓습니다. 창 앞에 섧도록 빨간 우체통 하나 세워놓습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오지 않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기다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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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나는 또 그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갈까요?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나는 또 그 무엇을 기다리며 한 걸음 나에게 다가갈까요?

골똘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지치지 말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고.

아래는 모 일간지 기자가 문학치료에 대한 참여자와의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에 응했던 분의 글입니다.

참고가 될 것 같아  허락을 받고 공유합니다.

 

문학치료에 대한 질문과 답변:

 

답변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저의 인적사항은요.

이름 : KB, 38세, 전업주부(실명으로 쓰셔도 괜찮습니다^^)

 

- 무엇이 문제라고 느끼셔서 문학치료를 받게 되셨는지요? 문학치료 받기 전, 정서•감정적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가급적 세세하게...

(예를 들어 가족 얼굴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던지, 사는게 싫어 자살충동을 느꼈다던지...구체적 증상과 그렇게 된 이유도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 우울증을 20년 가까이 앓았습니다. 최근 몇 년사이에 이 증세가 더 심해져서 급기야 2011년에 상담소를 찾게 되었지요.
늘 아침이 되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나?'하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하루를 종일 누워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의욕도 없다보니 사람들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어 일주일 내내 집안에만 있게 되는 생활이었습니다.
늘 불안하고 사람들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 불가피한 외출을 할 때에도 항상 긴장하고 사람들 표정과 반응을
살피는 등 외출을 하는 동안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늘 신경을 쓰느라 삶이 많이 고단하고 힘든 상태였습니다.
상담소를 다닌 후에 조금 나아지는 듯 했지만,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상담자가 더 후벼파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상담을 하러 갈 때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상담자가 이끄는 상담과정도 제게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상담자의 반응에 신경쓰느라 삶이 더 혼란스러워진 것 같고, 뒤죽박죽 엉켜있는 느낌이 들거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싶던 차에 이봉희 교수님이 집필하신 '내 마음을 만지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문학치료라는 것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어떤 이유로 문학치료를 선택하셨는지요?
:사실 또 자기를 노출해야 한다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내향적인 제 성격을 생각해 보니, 말보다 '글'로 노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문학치료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글쓰기, 글읽기의 효과에 대한 불신,의구심은 없으셨는지요?
:하하...(잠깐 웃음이 났어요^^) 제가 참 의심이 많아 돌다리도 여기저기 실컷 두드려보고 '안 건너는'사람이거든요.
그만큼 의심이 많아, 첫 회에 참여할 때, '그래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내가 낱낱이 분석해볼테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지요. 상담소에서 상담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알려지다보니
신빙성도 있고 한데, 문학치료라는 것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다보니 '신빙성'면에서 좀 약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과연 내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참여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과 불신이 가장 컸지요. 첫 회를 그런 생각으로 참여하다보니, 그날 많이 경직되어 있었답니다^^
 
- 기간은 얼마동안 문학치료를 받으셨는지요?
: 2012년 5월 26일 첫 회를 시작으로 7월 14일 마지막 회인 4회를 받아 총 4회를 받았습니다.
2012년 9월 22일에 시작하는 문학치료에 다시 참여할 예정이구요.
 
- 실제 문학치료는 어떻게 진행됐는지요? 어떤 과정으로 문학치료가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뭐를 읽고 어떻게 무엇을 쓰셨는지...
: 워밍업으로 간단한 글을 쓰고, 교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고른 한국시인의 시와 해외시인의 시(교수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시)를 매 회마다 분배해서 읽게 됩니다. (어떤 회에서는 한국시인의 시를, 어떤 회에서는 해외시인의 시를, 또 어떤 회에서는 두개 모두 읽을 때도 있구요)
그 시를 낭독해서 읽고 마음에 들어온 구절이나 눈길을 끈 구절을 토대로 자유롭게 종이 위에 글을 써내려갑니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쓰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시에 대한 비평이 아닌 오직 내 마음이 쓰고 싶은 말을 종이 위에 쏟아내는 시간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혹시 본인에 대해 깨달으신 게 있는지요? (내 문제가 이거였구나, 라든지, 글쓰는게 어렵지 않구나 라든지...)
: 아직 자라지 않고 있는 내면 아이라는 것이 제 안에 있다는 사실에 참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지 않아 제게 그토록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내향적인 사람에게 말이 아닌 '글'이 얼마나 편안했는지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 치료과정에서 신기하거나 놀라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스스로 변해가는 모습이나 글쓰면서 느끼는 해소감 등등)
: 우선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말은 누군가가 들어야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상대방의 '코멘트'가 따라오게 되지요.
그 코멘트가 사실 저같이 우울증세를 오래 겪은 사람들에겐 엄청난 '독'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종이 위에 쓰고 싶은 대로 쓴 '글'은 어느 누구의 검열도, 비판도, 평가도 받지 않다보니
마치 날개를 달은 듯 자유로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실제 치료 후(혹은 과정에서) 선생님께선 어떤 부분이 크게 달라지셨나요? (삶에 대한 마음가짐, 타인을 대하는 태도 등등)
: 가장 먼저, 보는 사람마다 얼굴표정이 상당히 편안해졌다고 놀랍니다. 제 스스로도 거울을 보면서 무척 편안해졌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에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아픔이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대하게 되었고
문학치료를 통하여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삶이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이 느낌이 제게 인생을 살아봐도 괜찮겠지? 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습니다.
 
- 혹시 육체적으로도 변화가 있으신지요? (건강적 측면에서)
: 제가 위경련과 만성두통에 오래 시달렸었는데, 이제는 그 증상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엔, 지인들과 식사하는 자리만 가도 위경련이 나고 소화가 거의 안 되어 소화제를 꼭 먹어야했거든요.
이젠, 지인들과의 식사자리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꼭 권하고 싶은 사람은
: 저처럼 많이 내향적인 사람이면서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문학치료에 오면 어느 누구도 나의 아픔과 고통을 자로 재거나 가위로 자르지 않고 공감해줍니다.
그 점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 않나 싶네요
 
- 끝으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다면요^^
: 이봉희 교수님의 문학치료에 대한 '깊은 사명감'에 너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매 회마다 얼마나 큰 공감으로, 큰 통찰력으로, 그러나 결코 과하지 않게 강하지 않게 잔잔하게 참여자들의 마음을 만져주시는지요... 교수님의 이 마음이 O기자님의 '좋은 글'로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O 기자님^^
글이 하나도 안 실려도 저는 괜찮습니다^^
이 과정만으로도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우리네 인생 곳곳에서 잔잔하게 등불을 밝히고 있는 분들의
따뜻한 기사를 O 기자님의 글로 많이 만나뵐 수 있길 바랍니다.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BK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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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한 글자 한 글자 교수님의 답신에 마음이 울컥해졌어요^^(좋아서 그랬어요)

 

세상에 저를 받아주시는 분이 있으시다는 사실에 정말 든든해집니다..

 

문학치료 시간에 쓰지 않은 이야기를 말쓰드리자면, 제가 어린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들로부터 적잖은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고, 또 벗어나 지지도 않았더랬지요.

 

그런데  문학치료를 만나면서,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정말 신기하게도 이 상처가 더 이상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왜 그럴까....생각해보니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칭찬과 격려 그리고 이해가 제 상처를 만져준 것이었어요^^

저도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셨거든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치유를 받는다는 말이

정말인 거였구나..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지요.

 

교수님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었더라면 더 안타까웠을 거란 생각에

많이 위로가 됩니다^^

 

Oh KA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제 생각이 제대로 표현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메일로 인터뷰 질문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문학치료가 어떻게 저를 살아나게 했는지, 더 말하고 싶었는데 표현력이 짧은 제게 한계를 느끼면서도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교수님께서 한 번 읽어봐 주시면 좋을 듯 해서요^^

지난 번에 보내드리려고 하다가 이제야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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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치료 참여자 , 청소년 상담사 선생님의 참여소감]

 

아래 글은 본 연구소의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에 참여한 분이 보내주신 워크숍 후기입니다.
개인적인 사례가 아닌 세션의 평가이므로 본 연구소의 워크샵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본인의 허락하에 여기에 실어봅니다.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 후기

1. 저널치료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점.


학회에서도 글쓰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분과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곳곳에서 글쓰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저널이 무엇인지 저널쓰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저널은 일기와 같다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그냥 [저널치료](학지사) 책을 봤을 때 가졌던 저널에 대한 생각이 직접 국내에서 유일한 "공인저널치료사"인 교수님의 가이드를 따라 방법을 경험하고 나니 몸으로 체득된다. 그냥 책을 봤을 때는 저널쓰기가 어차피 글쓰기 구나 생각하면서 글을 쓸라면 이런 방법들이 있구나라고 방법적인 면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 보니 저널쓰기의 여러 방법이 단지 도구일 뿐 진짜 중요한건 어떻게 진실되게 지금, 현재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경험해보는 거랑 책만 읽은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저널쓰기 방법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은 꼭 [저널치료] 전문가의 지도를 경험해보고 활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2. 상담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문학적으로 표현된 심리학 용어들


처음 만남에서 교수님은 자신은 문학치료사이며 심리학자가 아니고 심리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워크샵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표현하시는 용어는 문학적으로 달리 표현된 깊이 있는 심리학적 용어들이었다.(그렇다고 내가 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것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과 연륜을 가진 사람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깊이의 언어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상담이나 심리치료라고 하면 거부감을 먼저 느끼는 우리네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저널쓰기는 부담이 없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교수님은 끝까지 심리나 상담치료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문학치료라는 다학문적인 상담치료를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첫 걸음을 딛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3. 다양한 매체 활용의 놀라움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의 접목)


단순한 글쓰기치료가 아니라 무엇보다  교수님이 사용하시는 독특한 방법인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접목된 방법과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를 가진 문학적 매체들이 놀랍다. 그림, 영화, 시, 글, 등 자료의 방대함과 그 자료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하셨을 교수님도 존경스럽다. 때로 독서치료를 진행을 하다보면 몇 가지 힘든 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담자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책읽기를 별로 안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널쓰기에서 사용하는 영화의 한 부분, 그림, 책의 한 문구, 시들은 매우 공감되면서도 자료를 처음부터 모두 봐야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하여 좋았다. 독서자료를 활용 할 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배운 기회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글쓰기 방법들도 재밌다. 방법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저널쓰기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접목되는지를 알게 되었고 글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나 마인드 맵 등 자신이 쓴다는 것은 심각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쉬운 방법들이 글쓰기에 응용되어서 좋다.  



4.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뀜


워크샵시간에도 말 한 적이 있는 데 나는 오래전에 일기 쓰는 것을 그만 둔 적이 있다. 왠지 글쓰기가 가지고 있던 무게감이 나를 진정으로 쓰지 못 하게 만든 것 같다. 글은 자기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거라고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무의식을 의식의 검열로 검열하여 쓴 것 같았다. 정말 글을 아무 생각 없이 한번 쓸 때 끊지 않고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써 보는 것, 그것은 아직도 얄팍한 의식의 끝을 잡고 나의 글을 검열하는 나에게 처음에는힘든 일이었지만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써 보고 나중에 다시 의식적으로 다시 읽어본 후에 써보는 후기 또한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진정한 저널 쓰기 방법이 잘 알려져서 글을 쓴다고 하면 거부감과 부담감이 먼저 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도구로써 글쓰기를 애용하기를 바란다. 진정 부담 없는 무의식의 표현이 저널쓰기이다. 


 

5. 저널치료를 접하고 나서 나의 변화


이 글을 쓰기 위해 저널치료 숙제로 낸 나의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어떤 글은 내가 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생각도 있다. 자기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고 후기를 쓰는 것은 후기에 후기를 계속 써서 끝이 없을 것 같다. 나의 시간에 따른 생각의 변화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빠에 대해 글을 썼었다. 되도록 솔직하게 쓸려고 했다. 한번 썼다고 해서 그 감정이 다  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번 써 보자 머릿속에서 맴돌던 묵직한 무게감이 좀 준 것 같다. 뭐랄까? 계속 나의 화두인 것처럼 따라다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첫 발을 내딛었다고나 할까?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써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무의식이 어찌 변해가는지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단지 지금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앉아 무언가를 하엔 불편한 몸이 되어서 나중에 몸이 좀 편해지면 시작해야겠다. 이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줄었으니 몸이 가벼워지다면 더욱 쉽게 시작할 것이다.  막연히 언젠가 해야지 하던 것이 아닌 진짜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작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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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학치료와 저널치료에 대한 나의 생각

뭐든 경험을 하고 나면 바로 후기를 쓰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새롭다. 시간이 좀 지났고 또한 출산이라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나는 온통 신경이 그 쪽에 가 있는 관계로 그 때 느꼈던 신선함을 다 전달하지 못 할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저널치료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써 보았다.

*이 글은 집중 문학/저널치료 워크샵 (4일 8회, 2007년 7월)에 참석했던 한 참여자(청소년상담사)가 보내주신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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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년에 참여하신 분의 글 (허락하에 사적인 부분을 삭제하고 가져옴)

<후기2, 000>

전에 쓴 글을 보면서 마음이 저리면서도 불과 몇 주전보다 훨씬 더 따뜻한 눈으로 아니 과거에는 따뜻한 시선 자체가 없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은 따뜻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 가운데서 다시 이 글을 읽으니 상처 투성이 나의 20대를 안아주고 싶다.

문학치료를 이제 겨우 2번 받았지만 이미 내 삶에는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가보지 못했던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도 설레임으로 기다리고 있다.......

글을 쓰다 마지막 구절을 쓰다 놀라기도 했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내 안에 있는 나약함. 밖에서 보이는 강인함, 책임감 안에 감추인 한없이 약하고 소박하기까지 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문학치료를 처음에 받기로 시작했을 때 지적 호기심이 더 강했다. 그런데 늑대 이야기를 쓰면서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렸다. 지적 호기심이고 뭐고 문학치료 그 자체에 정말 집중하게 된 순간이었다.

 

몇 주가 지난 지금 이 글을 옮겨 적는 순간에도 그때의 감정이 밀려온다. 문학치료라는 것을 이제 겨우 맛보기 수준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내겐 이 글이 그 어떤 책보다, 그 누구의 상담보다, 그 어떠한 위로보다 내게 더 많은 말을 해준다. 내 손에서 그런 글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중략)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붙받쳐오르고 그 웃음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남들은 그것을 숭고하다던지 아니면 아름다운 희생의 모습이라던지 별별 소리를 하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나보다. 정확히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손이 먼저 갔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남은 몇 줄을 썼고 결국 마지막 줄,

이제 그만 달려도 된다는 사실이……그게 좋아서 웃는 것이리라.”

 

지금 타이핑을 치는 이 순간, 커피숍 한 구석에서 집중해서 쓰고 있는 내 눈가에 눈물이 맺힐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저 한 문장 앞에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아니 나는 울면 안 되는 아이로 자랐기 때문에 여전히 운다는 것에 굉장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안에서는 눈 밭에서 무릎을 꿇고 늑대 머리를 부여잡고 울고 싶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그 불쌍한 늑대를 나라도 안고 울어주고 싶다. 문학 치료를 하면서 2번째 세션에서도 많은 울림이 있었지만 내겐 이 첫번째 울림의 충격이 가장 크다.

 

지적 호기심에서 정말 내면을 향하게 되었고 내 안에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아이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이후 생략)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영어학과 영어연극부 Thespis 정기공연. 

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13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해왔다는게 자랑스럽다.

 

이번엔 3가지 그리스 신화 이야기.  큐피드와 싸이키, 오디세우스의 모험, 그리고 올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이야기를 공연하였다.

스텦까지 학생들이 25명이 참여한 뜻깊은 공연이었다.  학생들 모두 자랑스럽다.  우선 몇개의 사진만 올려본다.

 

 

 

 

The interview with :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소장・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이봉희

 인터뷰|2012.5월호

 

아픔없는 휴먼브랜드 되기, 나와의 화해 

《내 마음을 만지다》에서 당신은 "누구도 아픔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프지 않다'며 문학치료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낄 듯 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에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편인가?

이봉희 그들에게 내가 말하는 '아픔'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이야기 해준다. 세상을 살면서 작은 상처 하나 안 입고 사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상처를 올바르게 치유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란적으로 자신이 상처가 있거나 불완전하다거나,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게 굉장히 부끄러운 일처럼 여겨지다 보니 자기가 상처를 받았는지, 그 상처가 나의 생애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조차 하지 않고 무의식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시절 받은 상처는 스스로도 잘 모른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삶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상처를 받더라도 이를 잘 극복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스스로 치유했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사람은 대게 고통을 받으면 잊고, 피하려고 한다. 대면하기가 싫으니까 다른 데 집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흔히 알코올, 게임, 운동, 일 등에 '중독'된다. 아니면 책상 정리나 글씨체 등의 작은 일에 집착해 자기를 괴롭히는 진짜 문제로부터 떠나려 한다. 그걸 우리는 '바보되기'라고 부르는데 낮은 수준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진짜 문제는 직면할 수 없게 되고 해결할 기회도 놓치게 된다. 그런데 해결의 첫 단계는 대면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치유 전에 무엇이 진짜 내 삶의 문제인지 고통스럽더라도 캐내야만 하는 것인가?

이봉희 오해할 수도 있는데 문제를 일부러 캐내라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 내 삶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뭔가 불완전하다거나, 어느 순간에 도무지 내 뜻대로 나를 컨트롤 할 수 없다거나, 알 수 없는 열등감 혹은 분노가 나를 사로잡고 대인관계에서의 불편함과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며 회의감이 든다면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물론 내 경험상 '내가 이것 저것 누리는 것도 많고, 외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분들도 센터에 와서 글을 쓰고 얘기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과거를 들추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이 울기도 하고, 자신을 알게 되면서 치유된다.

 

휴먼브랜드 관점에서 이런 치유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을 잘 알고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봉희 물론이다. 더불어 이걸 꼭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나는 문제가 없다고 느낄지라도 남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기 상처를 누군가에게 대물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였다. 사람에게는 내가 받은 것을 남에게 되갚고 싶어하는 충동이 있는데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도 같은 맥락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상처에 대한 복수로 가까운 삶에게 피해를 주는 반복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느낀다. 제일 흔한 예가 부모님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들이 자녀를 가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해라고 해서 꼭 물리적인 폭력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컨트롤하며 아이를 제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를 자녀에게 대물림 한다. 마찬가지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쥐는 작은 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면서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다. '권력이 생기면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다짐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면 본대로 똑같이 한다. 제일 흔한 예가 회사, 군대다. 당하 대로 똑같이 하게 된다. 시어머니께 호된 시집살이를 당하면 억울해서 자기 며느리에게 반복하게 된다. 이걸 나는 '흡혈귀론'이라고 부른다. 흡혈귀가 피해자를 만들면 그 사람이 또 흡혈귀가 되어 다른 사람을 물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받는다. 제 아무리 독특하다 해도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면 그런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혹시 누군가에게 줄지 모를 상처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반대로, 부모가 아니거나 나보다 약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 느끼는 연약한 사람은 스스로를 폭행한다. 그게 낮은 자존감이 되고 우울증이 된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무야. 네 까짓 게 뭘 할 수 있겠어. 넌 한심한 존재야' 하는 생각이 일종의 '내적 비판자'가 되어 스스로를 짓누른다. 잘 살다가도 난관에 부딪히면 자존감이 꺾여 버리고 항상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느 가치관 정립을 불가느아게 만들고 고유한 독특함마저 사라지게 함으로 휴먼브랜드 관점에서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매우 근보넉인 문제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 A to Z

휴먼브랜드가 되기 전에 악순환을 만드는 흡혈귀 같은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낮은 자존감으 높이기 위한 치유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봉희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만 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낮은 자존감을 '내가 나를 잃어버린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부모나 사회가 나에게 매긴 점수의 통제를 받고 그들이 허용하는 강점만을 느끼며 사는 상태에서 내가 나인 것, 있는 그대로의 나,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그 모습 그대로의 내가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문학 치료의 목적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참 자아를 찾게 도와주는 것이다. 구스타프 융은 참 자아를 원더풀 차일드(wonderful child), 즉 '인간 내면의 놀라운 아이'라고 불렀다. 모든 사람 안에는 이런 아이가 있는데 다들 억압하고 산다. 종종 창의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좋아 행복한 사람들에겐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엿보인다. 왜 그럴까? 원더풀 차일드가 드러난 것이다. 감정은 하나의 에너지인데 (부정적일 해도) 그걸 흐르지 못하게 억압하면서 살면 나의 일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고, 고로 참 자아도 드러날 수 없다. *문학 치유 때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들은 이런 자기 감정들을 해방시키는 데 탁월하다.

*문학 치유

이 기사는 문학 치료의 여러 가지 바업 중 글쓰기를 통한 저널 치료를 주로 다루고 있으나 본래 문학 치료에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찾고 치료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이 소장은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를 알고 문학 치료를 받는 경우는 글쓰기를 통한 치유가 좀 더 쉽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는 문학이 매우 유용하다. 시나 소설 작품 중에서 발췌한 부분을 주고 거기에서 어떤 부분이 와 닿았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분명히 내 무의식 중에 뭔가 응답한다. 어떤 구절이 그런 무으식적인 응답을 끌어낼 수 있었는 지를 선별하고 이끄는 것이 전문 치료사들의 몫이다.' 라고 전한다. 문학 치료에 대해서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journaltherapy.org) 블로그를 참고하면 좋다.

 

말로 감정을 풀어내는 것보다 글쓱가 더 좋은 이유가 있나.

이봉희 말도 글처럼 스트레스나 억압된 감정을 풀어낸다는 의미에서 글과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으나 글쓰기가 더 나은 이유는 감정의 해방과 동시에 저장하기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성찰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해방하는 글쓰기를 할 때는몇 가지 기법들을 통해서 우선 걸러냄 없는 무의식적인 글쓰기를 하게 한 뒤에 꼭 다시 성찰하는 글을 쓰도록 한다.

 

무의식적인 글쓰기는 어떤 글쓰기를 말하는 것인가?

이봉희 우리는 평소 남을 의식하는 글쓰기를 많이 한다. 일기 조차도 들키기를 두려워하며 쓴다. 그런데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면 진정찬 자기 성찰이 어렵다. 그런 이유로 전문가들이 토해내는 글쓰기를 하도록 돕는 것이다. 문학 치료에 더러 시인이다, 수필가다, 등단했다며 자부심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글 실력은 치유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정말 솔직하게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 같은 극단적인 글쓰기를 하더라도 그게 돌아보면 진짜 원하는 것, 원하는 해결책은 아니다. 순간의 감정을 내놓은 뒤 다시 성찰해 진짜 문제를 찾은 뒤 소각하면 된다. 쓰고 성찰한 뒤 없애면 된다는 생각으로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

 

문학 치료 때 사용하는 방법도 같은 프로세스인가?

이봉희 치료를 집단으로 하는 경우에는 글을 개별로 쓴 뒤 발표를 하는데 물론 원하지 않는 부분은 절대로 하지 않고 성찰문만 읽는다. 놀라운 것은 글을 쓸 때 우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발표하면서 통곡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나도 왜일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쓴 글을 읽는 행위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에게 읽어주지 못할 경우에는 집에서 스스로에게 읽어주라고도 한다. 단순히 털어놓는 것만이 아니라 글을 읽을 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그 순간 쓴 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확실한 치료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나 일상 속에서 글쓰기를 통해 감정의 해방과 치료를 원하는 우리 독자들을 위해서 권하고 싶은 글쓰기 방법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이봉희 여러 가지 저널 기법을 활용하는 게 좋ㅇㄴ데 직장인들에게는 '5분 집중 글쓰기'를 권한다. 전철 안에서, 아니면 10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 시작 전 5분 동안 급히 글을 쓰는 것이다. 급히 글을 쓸 때는 글씨체나 맞춤법을 의식하지 말고 나오는 대로 멈추지 말고 써야 한다. 오늘 하루 내 느낌과 업무, 스트레스에 대해 쓰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5분 집중 글쓰기는 특히 스트레스가 많을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또 한가지는 '보내지 않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말을 정돈하거나 통제하지 말고 우선 다 쓰고 나서, 누구도 볼 수 없게 완전히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이메일에도 활용할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화가 날 경우 받는 주소를 자기 이메일로 하거나 임시 저장하는 형태로 쓰고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그 사람과는 아주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이런 저널 치료나 문학 치료 과정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해 참 자아를 발견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례라 할 만한 것들이 있나?

이봉희 많이 있다. 일례로 영문과 편입생 한 명은 겉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아픔을 혼자 감당해왔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본인을 희생하면서 산 것이다. 진짜 자기를 찾고 싶어 첼로, 바이올린, 작곡이며 영어며 안 해본 게 없었는데도 불안하고 두려워했는데 문학 치료를 받으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창의력을 제일 잘 발휘할 수 있는 게 바로 미술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국제 미술 공모전 등에서 상도 받은 재능 있는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상처가 치료되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고 대회에서 상도 받으며 진로를 바꿨다. 또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와 미움이 너무 컸는데 치료를 하면서 실제로 시어머니는 변한 게 없지만 자신이 바뀌면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내가 미국에서 만난 한 일본인 역시 자신이 몰랐던 두려움을 치료하면서 뜻밖에 영어 실력이 확 느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픔에서 회복된다는 것은 그저 아무일 없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참 자아에서 오는 창의력을 발아시켜 자기가 원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참 자기로, 리드lead하는 휴먼브랜드 되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픔을 그야말로 '완전히' 치료하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봉희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치유가 있겠나. 사는게 아픔인데. 하나의 문제가 해결도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마치 욕망과 같이 하나의 욕망이 해결되면 또 다른욕망으로, 욕망의 대상만 바뀌는 것처럼 말읻. 그러나 자족은 있을 수 있다. 자족이 모든 걸 해결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치유하기 어렵더라도 그 과정에서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기르는 것, 그게 치유의 마지막 목적이다.

 

'참 자아'를 계속 이야기하면서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자기답다'는 말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봉희 그게 맘대로 행동하며 산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혹은 흔히 생각하듯 나를 가렸던 가면을 벗는다. 하는 단순한 논리도 아니다. 벗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다.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브랜드는 '상품화'하는 것, 즉 나를 모아 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라 생각한다. 타인과 무관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과거 에리히 프롬이 '현대의 문제는 인간이 죽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과거 상품 또는 노동력을 사고팔고 했었다면 지금은 나 자신을 사고파는 시대라 인간이 상품처럼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로는 '잘 팔리는 인간'이 되면 성공했다, 하는 거다. 우리도 습관처럼 이래야 잘 팔려, 이 전공을 해야 잘 팔려, 이런 직업을 가져야 잘 팔려, 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브랜드가 되려면 구매자, 즉 세상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브랜드는 그들의 욕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서 리드하는 것이다. 단순히 대중이 원하는 상품이 되는 게 브랜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내가 나로부터 소외된다는 증거다. 대중이 원하는 내가 되려고만 하면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없다. 개성도 없어진다. 브랜드는 결국 자신이 가진 가치관, 정체성, 개성을 사람들이 소비하기를 바라는 것이기에 일반 시장 상품과 다른 거라 생각한다.

 

유니타스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의 조건이라 말했던 부분과 매우 흡사하다.

이봉희 그런가. 내가 본 브랜드도 개성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었다. 그런 건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까 말한 고통의 치료에 대해 잠시 떠올려 보라. 물론 고통 자체가, 그 에너지가 나를 성공을 위해 달리도록 동기가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고통에서 끝나면 절대 안 되고 그것을 극복해야 진짜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 고통에 매몰되어 '복수하겠다'는 관점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동기가 되어준 고통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면 다시 그 고통에 함몰되어 원치 않은 리더가 될 수밖에 없으니 정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 열정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대단한 낭비가 있을 수 있다. 가진 에너지 조차 극복에 쓸 테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간의 고통 때문에 지금 내가 되었다고 치료를 받으면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 치료는 말한 대로 참 자아가 솟아나오는 것이다. 그 참 자아가 세상에 끌려가는 내가 아닌 리드(lead)하는 나, 휴먼브랜드가 되게 해 줄 것이다.

 

이봉희 성균관대학교 및 동대학원 영문학과, 미국 남가주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덴버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2004년 전미문학치료학회(NAPT)에서 공인문학치료사와 저널치료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 교수이자 NAPT공식 한국 대표,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내 마음을 만지다》, 공저로 《예술의 사회적 기여에 관한 실증 사례 연구》등이 있다.

 

출처 : 유니타스브랜드

사랑-  이봉희 

 

  고통이 말했다
  내게 기대렴
  고통이 말했다
  너 혼자 살 수 없단다
  고통이 말했다
  내 품에 안기렴
  고통이 말했다
  내게 돌아와
  널 사랑해

출처: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1년 올해의 좋은 시 1000 /사랑 - 이봉희

7월~8월 8주간 5개의 병원에서 암환자, 장기요양환자(뇌변병, 지체부자유, 모야모야병, 등)들 총 26명,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12명을 만나 [시치료 프로그램: 내마음을 만지다]를 진행하였다.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회기가 끝날 무렵 병원과 주최측에서 환자들의 변화된 모습과 밝아진 표정, 우울하게 말이 없던 분들이 밝게 웃으면서 이런 저런 말을 활발히 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글쓰기문학치료(시치료)가 무슨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 했다고.....

 

이 프로그램은 몇년 전 내가 진행한 문화예술진흥위원회(문광부) 주관 독거노인 문학치료 프로그램을 감사나왔던 분들이 적극 추천하여서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방학은 쉬지 못한 채 아쉽게 지나갔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  부디 그분들이 계속 저널을 쓰면서 지금의 건강해진 마음이 더욱 강건해지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진은 참여 환자 분 26명 중 몇분과 찍은 것이다.  나이 많은신 붉은 조끼 입으신 분은 80세 되신 멋쟁이 신사분으로 외래환자이신데 병원에 붙은 광고문을 보고 찾아오신분이다. 끝나고 나서 의학도서관 선생님께 이 프로그램 계속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사진 찍을 때 그자리에 없었던 환자 분들이 많은데 내 마음 속에 선명히 그 아름답고 용감한 얼굴들이 찍혀 잊히지 않고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사진은 놀랍게도 일생의 큰 변화를 체험하신 한 자원봉사 참여자님이 정말 감사한 맘으로 일주일만에 한땀한땀(^^) 손으로 누벼서 만든 가방과 지갑을 선물로 주셔서 기뻐하는 장면이다.  감동의 순간이었지만 가방보다 더 큰 선물은 그분의 문제해결이었다.

 

(사진은 개인신상보호을 위해 공개 하지 않았습니다.)

 

 

 

 

 

Edward Hopper. 현대인의 고독을 이 사람처럼 리얼하게 표현한 사람도 드물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

 베니 굿맨의 연주와 함께....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그림은 내면 삶의 외적 표현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림은 필요없을 것이다.

 

일이 바빴던 두 달간의 방학기간.... 내게 휴식은 없었다. 

여러차례의 두통과, 혈뇨와.... 좀 지쳤었다.

그리고  급한 일로 떠났던 뉴욕에서 정신없이 보낸 보름간의 일정도 일로 뮤지엄 한 번 가보지 못했다.

 

유일한 휴가는 내 소중한 친구 S가 부안에 있는자신의 팬션으로 나와 친구를 초대해서 극진히 대접해준 1박2일간의 멋진 휴식. 정말 멋진 팬션과 주변의 드라이브코스와 채석강등 관광코스.... 꼭 추천하고 싶다.  

 

 

01

 

그리고 학교에서 간 수련회. 여러 특강들. 그리고 이날은  연수과정 중  오후에 등산을 하고 잠시 계곡에서 발을 담갔다.

땀으로 목욕을 한 채....

 

012

 

 

 

 

카톨릭대 인천성모병원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시치료 (2012. 7~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