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에 해당되는 글 270건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기형도 | 2024.07.16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윤천 | 2024.07.15 꽃잎- 도종환 | 2024.07.15 받아쓰다 - 김용택 | 2024.07.02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2 | 2024.06.12 엄마와 어머니 사이 - 목필균 | 2024.06.04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 2024.05.26 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 2024.05.11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 릴케 | 2024.03.30 정념의 기 - 김남조 | 2024.03.21 새벽에 아가에게 - 정호승 | 2024.03.19 한 송이 꽃-도종환 | 2024.03.08 3월의 시 - 나태주 | 2024.03.02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 이기철 | 2024.02.10 초승달 - 박성우 | 2024.01.15 촛불 켜는 아침 - 이해인 3 | 2024.01.07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4 | 2024.01.03 화이트 크리스마스 ㅡ나태주 | 2023.12.24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 2023.12.01 슬픔 - 김용택 1 | 2023.11.19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기형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 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기형도, 메모(1988.11)/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중에서>
-----------------
이 메모를 쓴 몇달 후 1989년 3월 그는 뇌졸중으로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갔다.
겨우 만 29세. 아까운 사람. 아까운 천재.
그는 "또 다른 세상," 그가 견딜 수 있는 날씨가 있는 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몄을까.
하고 싶은 말이 그곳에서도 공중에 흩어졌을까? 그 곳은 어디일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혼자서 부르며 왔던 어떤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만을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서늘한 열망의 가슴이 바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속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거기 이 세상을 한꺼번에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과도 같았을, 그런 일순과의 마주침이라면,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손가락 빗질인 양 쓸어 올려보다가, 목을 꺾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려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魂이라도 그쪽으로 머릴 두려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꽃잎 - 도종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받아쓰다 - 김용택 어머니는 글자를 모른다.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봄비가 오면 참깨 모종을 들고 밭으로 달려갔고, 가을 햇살이 좋으면 돌담에 호박쪼가리를 널어두었다가 점심때 와서 다시 뒤집어 널었다. 아침에 비가 오면 "아침 비 맞고는 서울도 간다"라고 비옷을 챙기지 않았고 "야야, 빗낯 들었다"며 비의 얼굴을 미리 보고 장독을 덮고 들에 나갔다. 평생 바다를 보지 못했어도 아침저녁 못자리에 드는 볍씨를 보고 조금과 사리를 알았다. 감잎에 떨어지는 소낙비, 밤에 우는 소쩍새, 새벽하늘 구석의 조각달, 달무리 속에 갇힌 보름달, 하얗게 뒤집어지는 참나무 잎, 서산머리의 샛별이 글자였다. 난관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는 살다가보면 무슨 수가 난다고 했다. 세상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수가 얼마나 많은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고 했다. 어머니는 해와 달이, 별과 바람이 시키는 일을 알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땅에 받아 적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았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엄마와 어머니 사이 - 목필균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딛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뽑내어 본들 徒勞無益(도로무익) 時間(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 * 徒勞無益(도로무익) 헛되게 애만 쓰고 아무 이로움이 없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봄날에선가 꿈 속에선가 - 릴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정념의 기 - 김남조 (1927. 9. 2-2023. 10. 10)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새벽에 아가에게 - 정호승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한 송이 꽃-도종환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3월의 시 - 나태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햇빛과 그늘 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
-------------- 아름다운 저녁놀에 고통을 매만져 반짝이면, 그때 손수건만 한 꿈이라도 헹구어 널어 말릴까? 가도 가도 닿지 못한 햇볕 같은 그리움이라도 널어놓는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초승달 - 박성우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 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욱신거려 견딜 수 없었겠지 더러는 베개에 떨어져 젖네.
-------------- 어떻게 이런 눈과 가슴과 언어를 가질 수 있을까?
초승달을 보면서 일기에 쓴 나의 말은 겨우 이거였는데.. "깜깜한 하늘에 차가운 초승달 내 가슴에 꽂힌 비수"
---------------- 초생달 [초승달]- 김강호
그리움 문덕쯤에 고개를 내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내고 눈썹만 남은 내 사랑
(출처: [한국의 단시조 156편] 2015/책만드는 집)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촛불 켜는 아침- 이해인>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별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올 때까지는 저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여줄 따뜻한 이불이란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은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2003) ----------
참 오랜 세월 새해아침이면 가슴에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처럼 그리움에 서럽던 마음을 나의 눈물로 다 씻어 헹구고 새로 떠오른 햇살처럼 밝은 희망이 되어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그 긴긴 밤을 지나는 동안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타는 가슴이 사랑보다 더한 행복임을 자꾸자꾸 일깨워주시니 그도 감사합니다.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이 모습 이대로 당신께 가고 싶습니다. 당신도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당신 모습 그대로 내게 오고 싶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울 곳이 필요할 때 서로의 등에 기대 말없이 그냥 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빙그레 웃음 지을 일이 있을 때 하늘 보며 떠올리는 달 같은 별 같은 얼굴이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어둠에 묻혀 어둠이 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기를 그래서 어둠도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화이트 크리스마스 ㅡ나태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Byun Shiji(1926-2013)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