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외롭다 - 김승희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절망은 중력의 평안이라고 할까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까지

힘을 다 빼고, 그냥 피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으면 되는 걸 뭐.......

그래도 머리는 연분홍으로 웃고 있잖아. 절망엔

그런 비애의 따스함이 있네.

 

희망은 때로 응급처치를 해주기도 하지만

희망의 응급처치를 싫어하는 인간도 때로 있을 수 있네

아마 그럴 수 있네

절망이 더 위안이 된다고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찬란한 햇빛 한 줄기를 따라

약을 구하러 멀리서 왔는데

약이 잘 듣지 않는 다는 것을 미리 믿을 정도로

당신은 이제 병이 깊었나.

 

희망의 토템폴이 선인장.......

피가 철철 흐르도록 아직,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인데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이유 없이 나누어주는 저 찬란한 햇빛, 아까워

물에 피가 번지듯.......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이 외롭다

 

(Totem Pole: 동물, 새 등이 수직으로 새겨진 힘찬 조각으로

부족내의 특정한 친족집단과 신화적으로 연결된 초자연적인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