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내가 참 많이 좋아하는 내 친구, 의사이며 화가인 그가 역시 의사이며 서예가인 남편과 함께한  6번째 동인전, "빛, 색, 묵, 흙"의 오픈닝 날이다. 가보지는 못하지만 마침 내가 화과자를 보냈는데 오프닝 날에 딱 맞추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그동안 그녀가 주로 그리는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그림은 너무나 아름답고도 정이 넘친다. 한결같으면서도 늘 변화하는 그의 색감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하는 시점은 전시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그동안의 그의 그림에는 따듯한 공동체의 힘이 있었다. 그만의 색채는 늘 화가를 닮아 매력적이고 정갈하며 아름답고 따듯하고 그러면서도 특유의 힘이 느껴진다. 그 묘한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번 여름 그 더위 속에서 작업한 그림들중  팜플렛에 있는 그림 한 점의 제목이 <숲으로 가면>이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녀의 마을의 집들이 나무들이 모인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위를 이기고 남을 푸른 나무들이 모인 숲의 생명력이 태양마저 푸르게 물들였다.

 

그녀는 늘 멀리서 집들이 모인 마을을 조망한다. 이번 숲 그림도 그렇다. 그녀의 집과 나무는 외따로 돋보이게 서 있는 적이 없다. [함께 '그러나' 홀로/ 홀로 '그러나' 함께]가 현대인의 삶, 현대인의 공동체를, 그 삶의 숲을 보여준다면 어쩌면 그녀의 그림은 [함께 '그리고' 홀로]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어쩌면 '그러나'와 '그리고'의 조화가 아닐까? 그 조화가 주는 따듯한 힘. 그게 늘 사회에 봉사하며 이웃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유명한 그녀 부부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서 "마치 우리 자신 내면의 어떤 중요한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녀의 <숲으로 가면>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자마자  곧바로 정희성의 시가 떠올랐다. 왜 일까... 생각해보다 몇 자 적어보았다. (다시 그녀의 다른 그림들의 사진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이 글은  그 중에 한 점인 <숲으로 가면>에 대한 나의 감상임을 밝혀둔다.)

 

<숲 -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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