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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 중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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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허가받은 자유시간이 고속도로 운전이다. 특히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퇴근길의 고속도로에서 듣는 음악은 내가 나를 떠나 음악과 하나가 되는 환희의 순간들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카잘스와 요요마를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듣는다든지, 1004번 파르티타 샤콘느를 듣거나, 아니 때로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을 때,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트를 한 음도 놓칠 수 없이 전 악장에 온전히 날 내어 맡길 때, 너무 맘이 비장한 날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특히 라크리모사(물론 이건 모차르트가 완성한 곡은 아니지만)를 들을 때, 아니면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기분전환으로 파바로티의 성가곡, 아니면 다른 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열정으로 부르는 "패션(Passion)" 이라든가, 카루소, 또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라면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아이다의 정결한 여신이라든가, 아니면 군둘라 야노비츠가 부르는(다른 사람은 안된다)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아리아 "그리운 그 시절은 가고, 즐겁던 시절은 잠시 뿐"만 들어도 어떤 때는 "좋아서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그 리스트를 다 열거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하루종일 음악이 흐르지 못하고 이것저것 불협화음으로 괴로울 때는 나도 올페우스처럼 지옥 같은 내 절망의 심연에 대고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라고 한 두 번 노래했던가? 음악을 듣다가 흥분되어 하루동안의 모든 고통스러운 맘의 응어리와 피로를 다 잊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날밤 퇴근길에도 너무 지쳐서 언제나처럼 커피를 진하게 보온병 가득 타서 비상약처럼 곁에 두고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FM을 틀었는데 마침 미샤 마이스키 공연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음악회에 가보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음악학과 교수는 내가 CD나 테이프, FM에서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그런 것으로는 음악을 도저히 못 듣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지만 내겐 그것도 좋아서 좁은 운전공간에 온 우주라도 함께 곁에 있어주는 양 충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날은 반 수면상태에서 운전하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차츰 나를 피로의 늪에서 끌어내어 넓은 광야로 달리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A 장조 3번 소나타는 압권이었다. 마이스키의 저음은 놀랍고도 화려한 노크였다. 나도 돌봐주지 못한, 내 관심이 미치지도 못하는 내 깊은 가슴속 바닥까지 찾아가 노크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깊은 속에서 문을 열고 릴케의 "소년"이 달려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야생마를 타고 달리는 소년, 나는 그런 소년이 되고 싶다"는 릴케의 시를 외우며 단숨에 말을 달리듯, 몸이 날아갈 듯 고속도로를 달려왔었다. 마이스키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한복을 입은 멋진 모습의 그가 신문에 화제가 되고 내한공연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모든 것 다 잊고 귀 막고 눈감고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의 음반을 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래 묵은 좋아하는 음악을 꺼내 듣고 또 듣는 기쁨과 달리 이렇게 뜻밖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은 잊을 수가 없는 감동이다. 지금 마이스키를 듣는다면 아마 그 첫 대면의 흥분을 느낄 수는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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