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풍경'에 해당되는 글 20건
천사들의 노래 -레나타 테발디 2 | 2025.01.13
Chuck Mangione, Feels So Good/ feat Don Potter 5 | 2023.07.18 Schubert-Arpeggione Sonata 1 | 2022.02.27 다른 사람들도 내가 느끼는 이것을 느낄까? 2 | 2020.09.06 Mozart, Concerto for Flute and Harp K.299 | 2020.08.09 Andreas Scholl 2 | 2020.03.24 Tchaikovsky-녹턴 & 로코코주제에 의한 변주곡 | 2020.03.14 Bach Cello Suite- prelude, Yo-yo Ma 1 | 2020.03.10 Pavarotti- Caruso | 2020.03.01 하이든 첼로 협주곡 1 | 2019.10.16 그 집 앞 - 이은상 시 현재명 곡 | 2019.09.15 하현우 - 항가(巷歌)/Street Song | 2019.06.06 My Son- Masatsugu Shinozaki | 2018.09.07 꽃이 필 때 - 이해인 1 | 2017.04.07 Rod McKuen | 2016.10.02 Chopin Nocturne in C# minor - Stefan Pi Jackiw | 2015.07.06 Vivaldi-Concerto in G minor for 2 Cellos | 2015.02.28 Schubert, String Quartet No.13 A minor(the Rosamunde Quartet) 1 | 2015.02.06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자클린느 뒤 프레 회고록 1 | 2008.01.13 미샤 마이스키- Beethoven Cello Sonata A mj | 2007.01.30 Schubert, Mille cherubini in coro ( Sop. Renata Tebaldi )/ 슈베르트-천사들의 노래 (1000명의 천사들의 합창)-레나타 테발디 테발디가 부른 이 곡 중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를 찾았다! 몇십 년 전 까마득한 어린 시절 테발디의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호수에 작은 나뭇잎이 떨어져 일으키는 물살 같던 그 전율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언제 들어도 좋다. 특히 자장가로 이어지기 전 부분이 정말 너무나 좋다.
Mille cherubini in coro A choir of a thousand cherubs
Ti sorridono dal ciel Smiles on you from the sky
Una dolce canzone A sweet song
T'accarezza il crin Caresses your brow
Una man ti guida lieve A hand is gently guiding you
Fra le nuvole d'or Through the clouds of gold
---
천사들의 합창단이
하늘에서 너에게 미소 짓고 달콤한 노래가 너의 이마를 쓰다듬네. 금빛 구름 사이로 부드럽게 너를 인도하는 한 손길-- 삶이 힘겨운 어떤 제자 선생님의 근황을 듣고 이 노래를 보내보았다.
힘겨울 때 그 손길을 느끼며 잠시라도 평안하게 쉼을 얻으시길 바라며.... https://youtu.be/L2OwbLAM43g?si=Ht2iPFGoQf9Vld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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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with vocals by Don Potter Album '70 Miles Young' 2003 (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Chuck Mangione의 가슴에 파고드는 트럼펫 연주를 Don Potter가 노래를 하는 이 곡을 참 좋아했었다.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로 시작하는 Don Potter의 첫 음성이
내 가슴을 흔들었지.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the thoughts of all the times I've cried
and felt this pain that I have known
because I needed just to hear that special something.....
Your name is music to my heart....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 숨을 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김용택 시인이 말하듯
"어디 울 곳"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도 필요한 안전지대.
내 가슴에 음악이 되어 들리는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안전한 숨을 곳이 되어준 이름
내가 생을 마치는 날 내 곁에 음악으로 남을 이름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시간엔
트럼펫 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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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오닐 - 그래미상 수상 축하합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Sting과 Toots Thielemans 의 Shape of My Heart.
https://youtu.be/IJvfMnnDxp4
... [I wonder if everybody feels the same.]
가슴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들 속엔 늘 알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슬픔? 그게 슬픔일까? 내가 좋아하는 캐더린 맨스필드(K. Mansfield)의 소설 “카나리아(The Canary)”에서 주인공이 이제는 그의 곁을 떠난 카나리아 새의 노래속에서 들었던 이름 붙일 수 없는 ‘슬픔’—그것과 같은 것인지도모른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대학교 1학년 때 읽고 너무 공감해서 소설의 그 부분을 그냥 외워버렸다(나도 모르게 저절로.... ) 맨스필드가 말했지.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나 자신을 고단하게 만들어도 잠시 멈춰서면 그 순간 그 ‘슬픔’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느낄지. 아무도 알 수 없죠. 하지만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의[카나리아 새의] 그 사랑스럽고 즐거운 작은 노래 속에서 내가 들은 것이 바로 그것ㅡ슬픔?ㅡ아 그게 뭐지? ㅡ그것이었다는 게.. “ (맨스필드) 아무리 열심히 지치도록 살아도 멈추는 순간 마주치는 그 무엇!!! 그게 무엇일까?? 나도 맨스필드처럼 평생 혼자 중얼거렸지. I wonder if everybody feels the same....하고. 그리고 열심히 그걸 알고 있는, 그래서 일생 그걸 함께 느끼고 내게 말해주는 “카나리아”를 찾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All the same, without being morbid, and giving way to—to memories and so on, I must confess that there does seem to me something sad in life. It is hard to say what it is. I don't mean the sorrow that we all know, like illness and poverty and death. No, it is something different. It is there, deep down, deep down, part of one, like one's breathing. However hard I work and tire myself I have only to stop to know it is there, waiting. I often wonder if everybody feels the same. One can never know. But isn't it extraordinary that under his sweet, joyful little singing it was just this—sadness ?—Ah, what is it ?—that I heard.(from The Canary by K. Mansfield)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Mozart, Concerto for Flute and Harp K.299, 2nd Mov. Andantino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Michael Tilson Thomas James Galway- Flute & Marisa Robles- Harp
https://youtu.be/lLPheTV6RTw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안드레아 숄(카운터 테너)의 노래 중 특히 좋아하는 비발디의 Stabat Mater와 언제나 가슴을 흔드는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Che farò senza Euridice?)를 권해본다. 내가 아끼던 비발디의 CD를 마음이 통하던 친구에게 선물했었는데 그에게는 별로 의미없는 것이었던 게 맘이 아프다.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Andreas Scholl - Vivaldi: Stabat Mater, RV 621 ----- Gluck의 올페오와 에우리디체 중에서 Che farò senza Euridice? 꼭 들어보길 권한다.
오늘은 안드레아 숄 대신 마리아 칼라스의 연주로 들어본다.
하데스로 사랑하는 에오리디체를 찾으러 가서 데리고 나오던 올페우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뒤를 돌아보고.... 에오리디체를 영영 잃게 된다. 고통과 한탄 속에 부르는 노래.
Che farò senza Euridice? Euridice! Ah, non m´avanza --- What will I do without Euridice? Euridice! Ah, no help comes to me anymore, 이곳은 잘 알려진 곳도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처럼 떠돌다 온 그 누구라도 위안이 되라고 올려본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Mozart에게 영감을 받아 차이코프스키는 이 우아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했다.
도입부에서 혼(horn)의 음이 들리고 첼로가 첫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할때 나는 너무 아름다워서 울어버릴 거 같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느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오늘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첫 변주곡 주제를 들어본다. 전설적인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33, TH.57 - Moderato assai quasi andante · Mstislav Rostropovich ·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 1969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 Tchaikovsky's Nocturne in D minor for cello by Julian Lloyd Webber and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Maxim Shostakovich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Yo-Yo Ma - Bach: Cello Suite No. 1 in G Major, Prélude (Official Video)
"음악처럼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어인가를 말할 때 사람들은 이건 고전이라고 말한다. 죽은 유럽인들의 예술이라고.. 그러나 나는 고전예술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개념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예술에서 다루는 것은 단순히 음악, 미술, 혹은 문학이 아니다. 그보다.... 예술은 인류, 사상, 감정 등을....사실은 누군가의 정신의 최상을 것을 함께 알리는 것이다." - YoYo Ma https://www.facebook.com/bonghee.lee.7399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다는 평을 들었던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1873-1921)의 화려한 삶 뒤의 개인적인 삶의 무상함을 옅볼 수 있는 내용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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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마음을 달래주는 첼로.. 드볼작 다음으로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특히 C major 아다지오 악장. 첫 음에서부터 전율이 온다..... 나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가장 좋다.
Joseph 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Adagio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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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Kim at Burano, Venice
[그 집 앞]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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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우 - 항가(巷歌)/Street Song
오래된 편지를 들고서
(작사/작곡/그림- 하현우) ------ *치료/교육적 목적으로 이곳에서만 사용합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 가슴에 구멍이 숭숭났던 시절 천안으로 긴 고속도로 운전하며 출퇴근 길에 차안에서 듣고 또 들으면서 위로 받았던 음악.
내가 가장 행복했고 그래서 가장 불행했던 시절에 내 곁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음악들 중 하나.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정동하 -친구야 너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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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 -이해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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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McKuen-After the Midnight
내가 너무너무나도 좋아하는 Rod McKuen. 이 사람의 목소리가 전하는 영혼의 고독의 깊이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음악은 이곳에서만 교육/치유적 목적으로만 사용됨.
스테판의 곡 해석을 조금이라도 더 잘 느낄 수 있게 늘 듣는 귀에 익은 유명한 곡을 그의 연주로 한 번 들어본다. 쇼팽의 녹턴 C샤프 단조 (Stefan Pi Jackiw 스테판 피 재키브는 유럽에서 '천재'라는 극찬을 받는 연주자. 피천득님의 손자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hlee Concerto in G Minor for 2 Cellos, RV 531- Allegro-Largo-Allegro Performed by Yo-Yo Ma with the Amsterdam Baroque Orchestra & Ton Koopman
무너지고 부셔지고 흩어지며 절규하는 첼로의 목소리가 가슴을 흔든다. 요요마의 비발디 연주 중 이건 정말 잊지 못할 명연주다. 무너져 내리는 저 소리... 난 지금 이 음악이 필요해. 귀가 먹먹해지도록 크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역시 좋다...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Sini Simonen, Benjamin Bowman, Steven Dann, Richard Lester at the 15th Esbjerg International Chamber Music Festival 2013.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출처 : (c)객석 1997년 11월 제목 : [해외화제]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 전경원
(치료와 교육목적으로 이곳에 가져왔으며 상업적 이용이 아님/ 저작권은 전경원과 객석에 있음) ----------------------------------------------------------------------------- 최근 영국에서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언니와 남동생이 발간한 뒤 프레에 대한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A Genius in the Family)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간지 ‘더 타임스’에 1주일간 요약분이 연재되기도 한 이 회고록에서 힐러리 뒤 프레와 피어스 뒤 프레는 천재적인 재능이 한 명의 여자와 그 가족들을 파멸로 이끌어간 과정과 함께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자클린느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결혼생활을 고통스럽게 기억해 내고 있다 해외화제/10주기 맞아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적 재능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일생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그것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영국인 특유의 금발과 수줍은 듯 밝은 표정을 가진 이 두 여자는 스물 남짓의 젊은 나이에 언론의 스포트이트 속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다 뜻하지 않게 때이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각기 음악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던 이 두 여자의 개인적인 삶은 비슷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불행했다. 영국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이애나의 전기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은 그녀가 다섯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만큼 괴로운 결혼생활을 견뎌야 했음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자클린느 뒤 프레에 대한 가족의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영국에서 다이애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불행했던 인생과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낱낱이 되살려놓고 있다. 특히 그녀의 언니인 힐러리 뒤 프레의 기억은 너무도 세밀해서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국의 한 지방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는 힐러리는 어린 시절의 자클린느와 나누었던 대화들부터 함께 음악을 공부하던 여동생의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보며 느껴야 했던 좌절감, 그리고 병의 징후를 보이는 자클린느를 회복시키려던 노력과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자클린느의 마지막 투병생활들을 이 책에 기록해 놓았다. 책은 1987년 10월 자클린느의 장례식에 대한 힐러리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재키는 월요일에 죽었고 그 이틀 후에 장례식이 있었다. 묘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재키에게 주기 위해 꺾어놓았던 꽃다발을 집의 테이블 위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가까운 꽃가게로 달려갔다. 꽃가게로 가는 길에는 마치 화려한 담요로 덮은 것처럼 색색의 꽃다발들이 쌓여 있었다. ‘이 꽃들은 다 어디서 난 거죠?’ 꽃가게 주인은 대답했다. ‘오늘 여기서 굉장히 큰 장례식이 있어서요. 위대한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가 죽었답니다. 주문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군요. 그런데 무슨 꽃을 찾으시지요?’ 차가운 뺨으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면서 떠듬떠듬 내가 원하는 꽃을 설명했다. 나는 분홍빛이 도는 크림색의 장미 다발을 사고 싶었다. 재키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지갑도 집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주인은 꽃다발을 그냥 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쉰 목소리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재키의 예언 ‘어른이 되면 난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힐러리는 장례식을 치른 후 자기 가족이 자클린느를 잊어버리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클린느가 병상에 누워 있는 15년간 그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녀가 사망한 후 다시금 ‘재키 어머니의 극성스러운 가르침이 그녀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라고 자클린느의 죽음을 가족의 탓으로 몰고 가는 여론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클린느의 첫번째 스승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언제나 피아노를 치거나 손뼉으로 리듬을 맞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자클린느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한다. “어느 날 재키는 어머니와 함께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첼로 소리가 들리자 재키는 ‘엄마, 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어’라고 말했다…다섯 살이 되던 생일날 3/4 사이즈의 첼로를 받은 재키는 그 자리에서 악기의 D선을 활로 그어 제대로 된 소리를 냈다. 적당한 어린이용 교재를 찾지 못했던 어머니는 직접 그림과 악보를 그려가며 재키를 위한 교재를 만들었다. 매일 아침 재키는 눈을 뜨자마자 간밤에 어머니가 그려놓은 새로운 악보를 찾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자클린느의 어머니는 다른 두 자녀들보다 훨씬 더 자클린느를 애지중지 보살폈다. 그러나 어떻게 자클린느의 가족을 ‘재키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라고 몰아세울 수 있을까. 자클린느는 19세에 이루어진 런던 데뷔 이후로 가족들과 거의 함께 지내지 못했으며 그 전에도 이미 ‘천재’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들을 매우 힘들게 했다. “나와 피어스는 언제나 재키의 뒤에 있어야 했다. 재키가 깨어나지 않은 아침에는 다들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다녔으며,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재키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천재였으니까.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은 다 당연시되었다.” 오히려 자클린느의 비극적인 발병과 요절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었을까? 가공할 만한 그녀의 재능이 평범했던 그녀의 육체를 소진시켜 때이른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 아닐까? 힐러리는 세 살 아래의 동생 자클린느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가지 기억을 되살려냈다. “펄리에 있던 집의 정원 끝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나지막한 울타리가 그늘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와 재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열두 살 때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둘만의 장소인 울타리 밑에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재키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 줄까?’ ‘뭔데?’ ‘이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내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난 아마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그럴 거 같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자클린느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렌보임과의 불화, 그리고 우울증 자클린느의 연주 활동은 1965년부터 1971년경까지, 불과 6년 정도에 그쳤다. 그녀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서서히 온몸이 마비되어갔다. 아직도 왜 자클린느가 이 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언론에 공개된 그녀는 언제나 건강하고 쾌활하며 연주에서나 삶에서나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불 같은 사랑에 빠져 하루 만에 유태교로 개종하고 7일 전쟁중인 이스라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클린느의 남동생 피어스 뒤 프레는 자클린느가 바렌보임을 처음 가족에게 소개했던 때를 이렇게 기록했다. “1967년 3월 마지막 날, 재키는 다니엘을 데리고 집으로 오겠다고 전화했다. 그녀가 오기 1주일 전부터 온 가족이 얼마나 많이 집을 청소했는지, 약속한 날에는 온 집안 구석구석 반짝거리지 않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재키는 저녁 무렵에 보드카 한 병을 든 채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다. 그녀가 그런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니엘은 재키보다 훨씬 작았다. 마치 큰 누나가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온 것 같았다. 거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본 다니엘은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곧 우리 집은 아주 인상적인 음악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는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이들의 결혼은 가히 세기의 결혼이라 할 만했다. 신문에는 바렌보임의 품에 안겨 파안대소하고 있거나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자클린느의 사진이 가끔 실렸다. 바렌보임은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끄는 대로 자클린느는 승승장구했다. 연주회마다 대성황을 이루었고 언론의 평은 언제나 찬사 일색이었다. 과연 자클린느는 행복했을까? 힐러리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언론에 등장하는 자클린느의 모습은 실제 그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솔직히 재키는 신문에 나오는 사진에서처럼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다. 자클린느는 수줍고 때로 멍했으며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를 만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힐러리는 대중매체에 공개된 생활이 주는 연속적인 긴장감과 함께 바렌보임과의 불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자클린느의 발병에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다발성 경화증의 징후는 71년 말부터 나타났지만 그 2년 전부터 자클린느는 이미 진정제를 상용해야 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는 도저히 바렌보임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바렌보임 역시 가끔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보드카에 엉망으로 취해 버리는 그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힐러리의 회고다.“71년 봄이었던 것 같다. 한밤중에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재키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키의 목소리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흐느껴 울었다. ‘다니엘이 날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해… 도와줘… 당장 와줘…’ 아마 그녀가 진정제를 먹는 것을 다니엘이 발견한 것 같았다. 재키는 계속 지금 호텔로 와 자기를 데려가라고 횡설수설했다. 그러나 곧 다니엘이 전화를 뺏어 들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난 목소리로 왜 자기들의 결혼에 당신들이 간섭하느냐, 당신이 나나 의사보다 더 재키를 잘 아느냐고 소리쳤다. 나는 다니엘에게 결혼에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 재키가 정상이 아니니 미국으로 가 재키의 얼굴만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전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얼마 후에 자클린느는 혼자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와 힐러리의 집으로 왔다. 바렌보임과는 만나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바렌보임을 증오하고 있었고, 결혼생활은 완전히 끝장난 듯이 보였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하루종일 큰 소리로 울 때도 많았다. 자클린느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힐러리 부부는 프랑스 해안가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 여행은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다. 명랑해진 자클린느는 도버 해협을 건너며 배의 갑판 너머로 진정제 병을 던져 버렸다. 그러나 바렌보임이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그녀의 증세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클린느는 남편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바렌보임이 떠난 후, 자클린느의 정신상태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재키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재키를 빨리 찾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재키를 언덕 뒤편에서 찾아냈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올리브 나무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멍하니 눈을 뜬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키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재키가 자신의 삶에 걸려 있는 무거운 부담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 버릴 게 틀림없었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언론은 자클린느 뒤 프레가 과도한 연주일정으로 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으며, 72년까지 공식적인 연주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 기간 동안 자클린느는 애쉬만스워드에 있는 힐러리 부부의 농장에 머물렀다. 어릴 때부터 자클린느는 가족이란 무한정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 16개월 가량의 요양기간 동안 그녀가 힐러리에게 입힌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힐러리는 이 기간 동안 매일매일 뒤바뀌는 그녀의 기분과 요구를 들어주면서 “차라리 재키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클린느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짐과 함께 사라졌고 힐러리는 그녀가 바렌보임과 화해했으며 무대에도 복귀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재키는 다시 다니엘의 시계추 같은 스케줄에 맞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주회와 늦은 저녁식사, 호텔과 여행.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견딜 수 없어”라고 소리치며 울던 것들이 아니었던가. 과연 재키가 또다시 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73년 2월에 자클린느의 공식적인 재기 콘서트가 영국 최대의 연주회장인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렸다. 연주곡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었고 지휘는 주빈 메타가 맡았다. 객석에 앉아 있던 힐러리는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감지했다. “…재키는 첼로를 높이 들고 뛰는 듯한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환호성과 휘파람이 온 홀 안을 울렸다. 무대에 선 재키는 무척 밝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정적 속에서 연주를 시작한 재키는 곧 깊은 집중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활을 긋자 강렬한 영혼의 울림이 홀 안을 꿰뚫었다… 그러나 첫 두 소절 이후 재키의 연주는 서서히 느려졌다. 예상치 못하고 있던 오케스트라는 재키의 연주를 조금 앞서나갔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메타는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느리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의 팔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잡아당기듯이 움직였다. 청중은 거의 재키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2악장 무렵에 이르러 나는 알 수 있었다. 재키의 연주에는 과거의 그녀를 가득 채웠던 자발적인 즐거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대의 재키는 순교자처럼 괴롭게 한 소절 한 소절을 연주해 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의 연주는 무척이나 길고 힘들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재키는 웃음으로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에게 환호하는, 그러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들 앞에 서 있었다…” 얼마 후 자클린느는 힐러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힐러리의 남편에게 소금통을 건네주던 자클린느의 팔이 갑자기 식탁 중간에서 구부러졌다. ‘흠, 재키, 형부가 식탁 한가운데에 앉아 있단 말이니?” 나는 농담을 하다 재키의 파래진 얼굴을 보았다. 신음 같은 한 마디가 재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진단받은 자클린느는 치료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녀는 그럭저럭 혼자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피어스가 뉴욕에서 만난 자클린느의 모습은 참담했다. ‘“의사들이 내가 죽을 거라고 했어.” 재키는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걸을 수도 없어. 그 사람들이 죽기 전에 먼저 정신이상이 온다고도 했어. 난 이미 미쳤는지도 몰라.” 재키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와 있었다. 워낙 건강했기 때문에 병세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재키를 휠체어에 태우고 재활훈련센터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걷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이크에서 금속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로 온 환자는 두번째 테이블에 가서 막대를 잡고 걷기 훈련을 시작하세요.’ 재키는 묵묵히 막대를 잡고 둔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재키를 다시 휠체어에 태워 병실로 돌아와 버렸다. 누구보다도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언제나 빛 속에 서 있던 내 누나를 그런 인정머리 없는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72년 10월부터 87년 10월까지, 자클린느는 15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흘러갔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거의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 그동안 그녀를 돌본 사람은 힐러리와 몇몇 친구들뿐이었다. “87년 들어 재키는 완전히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을 뜰 수가 없어 기구로 눈꺼풀을 벌려놓아야만 했다. 내가 병실에 들어가면 재키는 ‘안녕, 힐러리’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목에서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팔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내 어깨를 만지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팔을 잡아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재키, 다니엘은 가끔 오니?’ 재키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경멸할 때 내는 소리였다. ‘그럼, 그 사람 가족들 중에서는 오는 사람이 있니?’ 그녀의 목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소리가 났다.” 87년 10월 중순, 자클린느는 폐렴에 걸렸다. 19일에 의사는 최후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자클린느의 의식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힐러리와 피어스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 연락을 받은 바렌보임이 파리에서 급히 날아왔다. 그즈음 바렌보임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헬레나 바쉬키로바와 살고 있었다. 힐러리는 ‘갑자기 100년은 더 나이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동안 그를 원망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바렌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재적 재능과 자신의 나머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했던 불행한 여자는 숨을 거두었다. 힐러리는 바렌보임을 두둔하며 자기 가족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리한 이 책을 끝내고 있다. 힐러리가 지켜본 그는 분명히 자기 방식대로 자클린느를 사랑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둘의 성격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95년 가을에 런던에 온 다니엘을 오랜만에 만났다. 재키가 죽은 후 처음으로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다니엘은 말했다. “난 항상 재키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능력에 감탄하곤 했지요. 연주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냈고 첼로라는 악기의 한계 너머까지 갔었어요. 아마 첼로 입장에서도 재키 같은 연주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걸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다니엘, 재키가 그리워요?’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주 많이요… 난 아직도 런던에 오면 이곳에서 재키와 연주하던 생각이 나서 즐거워요.’ ‘그애 무덤에 가보았나요?’ ‘아니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무덤 같은 데는 안 가요. 어머니 무덤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전원경/‘객석’ 런던 통신원 (저작권은 전원경에게 있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수필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 중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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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허가받은 자유시간이 고속도로 운전이다. 특히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퇴근길의 고속도로에서 듣는 음악은 내가 나를 떠나 음악과 하나가 되는 환희의 순간들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카잘스와 요요마를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듣는다든지, 1004번 파르티타 샤콘느를 듣거나, 아니 때로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을 때,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트를 한 음도 놓칠 수 없이 전 악장에 온전히 날 내어 맡길 때, 너무 맘이 비장한 날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특히 라크리모사(물론 이건 모차르트가 완성한 곡은 아니지만)를 들을 때, 아니면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기분전환으로 파바로티의 성가곡, 아니면 다른 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열정으로 부르는 "패션(Passion)" 이라든가, 카루소, 또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라면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아이다의 정결한 여신이라든가, 아니면 군둘라 야노비츠가 부르는(다른 사람은 안된다)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아리아 "그리운 그 시절은 가고, 즐겁던 시절은 잠시 뿐"만 들어도 어떤 때는 "좋아서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그 리스트를 다 열거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하루종일 음악이 흐르지 못하고 이것저것 불협화음으로 괴로울 때는 나도 올페우스처럼 지옥 같은 내 절망의 심연에 대고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라고 한 두 번 노래했던가? 음악을 듣다가 흥분되어 하루동안의 모든 고통스러운 맘의 응어리와 피로를 다 잊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날밤 퇴근길에도 너무 지쳐서 언제나처럼 커피를 진하게 보온병 가득 타서 비상약처럼 곁에 두고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FM을 틀었는데 마침 미샤 마이스키 공연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음악회에 가보지 못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음악학과 교수는 내가 CD나 테이프, FM에서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그런 것으로는 음악을 도저히 못 듣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지만 내겐 그것도 좋아서 좁은 운전공간에 온 우주라도 함께 곁에 있어주는 양 충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날은 반 수면상태에서 운전하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차츰 나를 피로의 늪에서 끌어내어 넓은 광야로 달리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A 장조 3번 소나타는 압권이었다. 마이스키의 저음은 놀랍고도 화려한 노크였다. 나도 돌봐주지 못한, 내 관심이 미치지도 못하는 내 깊은 가슴속 바닥까지 찾아가 노크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깊은 속에서 문을 열고 릴케의 "소년"이 달려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야생마를 타고 달리는 소년, 나는 그런 소년이 되고 싶다"는 릴케의 시를 외우며 단숨에 말을 달리듯, 몸이 날아갈 듯 고속도로를 달려왔었다. 마이스키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한복을 입은 멋진 모습의 그가 신문에 화제가 되고 내한공연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모든 것 다 잊고 귀 막고 눈감고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의 음반을 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래 묵은 좋아하는 음악을 꺼내 듣고 또 듣는 기쁨과 달리 이렇게 뜻밖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은 잊을 수가 없는 감동이다. 지금 마이스키를 듣는다면 아마 그 첫 대면의 흥분을 느낄 수는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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